내가 만난 죽음의 얼굴

by 류다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영화를 본 지도 꽤 됐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톰 행크스의 '오토라는 남자'를 보았다. 사랑하는 아내가 암으로 죽은 후 까칠한 남자 오토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아내 곁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목매달아 죽기, 차에서 가스 자살, 기차역에서 떨어지기, 권총 자살 등을 시도해 보지만 성가시게 하는 이웃의 방문으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자살한 모습을 봤던 이웃집 여인 마리솔은 오토를 걱정하고, 오토도 다정한 이웃들에게 마음을 열고 계속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살아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이 생각될 때, 우리를 삶의 방향으로 돌아 세우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과 친구의 사랑과 관심, 또는 죽을 용기의 부족. 계속 살아간다고 해도 아무런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이 생각되고 모든 게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살다 보면 그래도 밝은 날이 온다.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될 때가 온다고 믿고 싶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오래간만에 떠올려본다.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굳이 앞당겨 오늘 죽을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간절하게 살고 싶어도 삶이 허락되지 않는 시한부 인생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가족, 친지를 제외하고 내가 만난 첫 죽음은 같은 학원을 다니던 언니였다. 서른도 채 되지 않았고 건강해 보이던 언니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암이라고 하였다. 어느 날 병문안을 갔더니 언니는 곱게 화장을 하고선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두고 가는 가족이 있다면 더 마음 아프지 않을까, 차라리 결혼 안 한 것이 덜 마음 아프지 않을까. 하지만 본인으로선 결혼이나 찐하게 사랑도 못하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언니는 무신론자였으나 병원에서 세례를 받고 죽음을 맞았다고 들었다. 그때는 20대라, 건강했던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을 뿐,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진 않고 지나갔다.


30대에 나를 스쳐간 죽음은 알던 동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이었다. 원래도 폐가 좋지 않았던 동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바쁘게 지내던 차라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계시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역할을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 동생은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멀어진 것 같다.

어머니는 병으로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안 계시니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따뜻함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쓸쓸하게 얘기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공허하게 울리는 것 같다. 그 느낌은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올 때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창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일까? 어머니의 부재가 가정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


몇 년 뒤에 나도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고, 한참 지나서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 움직이고 말하던 사람에게 생기가 사라지고 더 왜소해져 굳어진, 염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를 하라고 하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죽어서 화장을 하면 담배 한 개비 정도의 재만 남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한 줌 재로 사라질 인생인데 참 많이 아웅다웅하며 별것도 아닌 일에 괴로워하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해탈하여 삶에 대한 태도가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서인지, 여전히 싸우고 미워하고 안달복달하며 살아갈 때도 있다. 편안하고 즐겁게 살고 싶은데, 삶이 우리를 그렇게 평화롭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나에게 다가온 죽음은 같이 공부하고 같은 일을 하던, 고향의 아는 동생이었다. 직장 건강검진을 하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는 소리를 들었고 암이라는 말을 듣고 서울에 올라갔으나 이미 손 쓸 방법이 없었다. 마흔이 조금 넘어서 하늘의 부름을 받은 동생.

암 병동에 갔을 때, 입원해 있던 그가 가슴이 답답하다고 등을 좀 두드려 달라고 했다. 처음에 살살 두드렸더니 더 세게 두드려 달라고 해서 힘을 실어 두드렸더니 '감정이 실렸다'라고 했었지. 글쎄, 무슨 감정이 실렸을까? 어쩌면 그 말에는 자기보다 더 오래 즐거움을 누리며 살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묻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간호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엄마에 대해 까칠하게 말했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원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녀가 바란 것은 뜨거운 눈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부모님 때와는 달리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눈물을 흘렸다면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까.



비슷한 연배의 죽음을 접하니 이제 죽음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고, 어느 날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더군다나 가족력이 있으니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 죽음이 나에게 다가온 순간, 나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한때 뜨겁게 사랑했고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이란 과연 존재할까. 어느 날 예고 없이 죽음의 그림자가 닥치더라도 회한이 많이 남지 않도록 오늘 조금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현실의 삶을 향유하고 싶다.



#죽음 #상실감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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