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아서

인생은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by 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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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인생을 좀 더 나은 걸로 만들고 싶어서'라고 마스다 미리는 말했다.

우리 부모님만 해도 특별한 취미가 없던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배우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어떻게 보면 '돈이 안 되는' 취미에 더 열심인 것은 남자들보다 여자 쪽이 더 많은 것 같다. 문화센터만 해도 여성들이 더 많은 것은 여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뭐든 여성 쪽이 부지런히 배움에 몰두하는 성향이 더 강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때 사회복지나 요양보호사 같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아무튼 가만히 있으면 못 견디는 병에라도 걸린 듯, 일과 연관된 것이든 단순한 취미이든 끊임없이 배우는 족속(비하할 의도는 없음)들이 있다. 글쓰기를 배우고 독서클럽에 가입하고 기타나 그림을 배우기 위해 평생교육원에 다니기도 하고, 은퇴 후 제2의 삶을 위해 공인중개사 등의 자격증을 준비하는 사람들. 운동을 꾸준히 하고 미라클 모닝으로 아티스트 웨이를 추구하며 한 자리에 멈추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많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기라도 한 듯, 삶이 무위(無爲)로 돌아가기라도 할까 봐 오늘도 사람들은 산에 오르고 산티아고 길을 걷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그렇게 부지런하지 못한 나조차 공예 등 다양한 취미를 번갈아가며 배우고, 평생교육원에서 여러 가지 수업도 받은 적이 있고 글쓰기도 열심히 하고 있다. 주말이나 연휴 동안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다 지나버리면 얼마나 허무한지 모른다. 여행을 간다거나 책 한 권, 영화 한 편 본다거나 친구를 만난다거나 뭔가 기록에 남길 것이 꼭 있어야 기분이 좋아졌다. 하다못해 청소나 한 구역 정리라도 했다고 일기에 한 줄 적을 수 있어야 뿌듯했고, 뭐 하나 한 것 없이 무의미하게 보내는 멍한 나날이 싫었다.




내가 그토록 찾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우리가 원한 것은 살아가는 의미, 인생에서 뭐라도 꼭 붙잡기 위함이 아닐까. 한번 살다가는 인생, 제대로 살았노라고, 의미를 추구하며 노력했노라고 마지막에 말할 수 있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보면 인생은 어쨌든 정자와 난자의 만남에서 시작되어 한 줌 재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이런 고민은 직업과 진로를 위한 준비기간인 10대에서 20대에 걸쳐서 시작되지만, 인생이 큰 변화 없이 고정되는 중년에 이르면 다시 한번 용트림이 시작된다. 그냥 이대로 지내는 것은 재미도 없을뿐더러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제자리걸음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내딛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구이다. 매슬로우(Maslow)는 생리적인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존중 욕구와 최상위의 자기실현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고 했다.


국민소득이 늘고 먹고살만해지자, 많은 책과 언론과 유튜브는 '중년' 또는 '노년'의 자기실현 욕구를 일깨우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보고 킬링 타임을 보내고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 외에 자꾸 배움을 부추기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구매력이 있는 중년과 노년을 공략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그전 세대와는 달리 학력이 높아진 신중년층의 내면에 자기 성장 욕구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더 나은 나'가 되도록 책을 읽고 미라클 모닝을 하고 운동을 하고 여행하는 세대, 그 시대적 흐름과 함께 우리도 흘러간다. 이대로 멈추면 고인 물처럼 썩을까 두려워 재빠르게 흘러간다. 느긋한 휴식과 여유도 분명 필요하지만, 이왕이면 노력하며 사는 것이 더 흡족하지 않은가 말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노래는 만들어지고 시와 이야기가 써지고 누군가는 산책하고 몇 킬로를 달려간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 하나 건지기 위해서.



#배움이라는것 #중년의의미 #의미의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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