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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동협 May 30. 2024

폭우에 울다가 웃은 아이

컴퓨터 게임 이외에는 딱히 좋아하는 취미가 없던 아이가 낚시에 홀딱 빠졌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낚시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결국 울음까지 터뜨렸다. 아이 엄마는 비가 너무 많이 오니까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놀자고 아이를 회유했다.


"비가 이렇게 퍼붓는데 어떡하지?"

"비 온다고 왜 못 해?"

"어제도 낚시했잖아. 오늘은 경치 좋은 레스토랑에 편하게 쉬어도 되잖아."

"레스토랑 같은 건 관심 없어. 여기 낚시하러 왔잖아."


이 말을 내뱉고 아이는 펑펑 울기만 했다. 아이 말이 맞았다. 이 캠핑장을 고른 이유도 낚시 때문이었다. 근처에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호수가 있었다. 비 때문에 낚시를 못 하게 되니까 아이가 슬퍼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냥 내리는 비도 아니라 바가지로 쏟아붓는 장대빗 속에서 낚시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이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 걸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간절히 원하는 게 없었던 아이였다. 아이한테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뭐 받고 싶냐고 물어봐도 시큰둥하게 그런 거 없다고 했다. 우연히 친구 가족을 따라서 낚시를 다녀온 후로 물고기 잡는 게 아이의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되고 말았다. 


아이는 주말만 되면 낚시하러 가자고 우리를 졸랐다. 나는 낚시를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의 소원대로 낚싯대도 샀고 쉬는 날이면 낚시터를 찾아 오레건주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이번 여행의 테마도 낚시였다. 콜럼비아강과 태평양이 만나는 물고기의 요충지에 있는 '포트 스티븐스' 국립공원 캠핑장으로 알아봤다. 캠핑보다 낚시에만 집중하려고 숙소도 오두막집으로 예약했다. 수도와 조리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그날 잡은 물고기도 요리해서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물고기만 낚으면 되었다.


아이가 애청하는 낚시 유튜버 에이스는 잡은 물고기를 즉석에서 구워 먹는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그 도전을 자기도 해보겠다고 했다. 레몬과 버터도 넉넉히 챙겨와서 준비에 만반을 기했다. 아이가 올해부터 시작한 자기 유튜브 채널에도 그런 내용의 비디오를 올려보겠다고 잔뜩 흥분했다. 나는 어떻게든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첫날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비가 그치면 다시 나오기로 하고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멈출 줄 알았던 비가 그치기는커녕 빗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일기예보를 확인해도 비가 그칠 확률은 아주 낮았다. 폭우 속에서 낚시하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낚시 대신에 다른 여행 계획을 세워보려고 했다. 계획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아이는 무조건 낚시를 가야 한다고 우겨댔다. 급기야 낚시를 못할 바에야 아예 집에 가자며 대성통곡을 했다.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는 게 최우선이였다. 아이를 다독이던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비옷이라도 사러 가자?"

"그게 무슨 소리예요?"

"비 맞으면서 그냥 낚시할 순 없잖아. 그러다가 감기에 걸리면 아파서 네가 좋아하는 낚시 못 하잖아."

"아빠, 그러면 내일 낚시하러 갈 수 있어?"

"네가 그렇게 원하면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생글생글 웃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떼도 안쓰던 아이가 아기처럼 울다가 웃었다.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 아이는 아이인 모양이다. 아이가 조금 진정되더니 심심하다면 해리포터 보드게임을 꺼내서 같이 하자고 졸랐다. 게임을 하면서도 아이는 내일 낚시할 계획을 세우느라 바빴다.


"아빠, 매번 똑같은 미끼는 지겨워."

"무얼로 하는 게 좋을까?"

"인터넷에서 봤는데, 소시지나 마시멜로도 물고기가 좋아한대."

"그래? 내일은 그걸로 해보자."


아이가 낚시에 빠지기 전에는 나는 낚시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낚싯대에 낚싯줄을 연결할 줄도 몰라서 쩔쩔맸다. 낚싯줄 던지는 방법도 몰라서 아무렇게나 던지다가 나뭇가지에 걸리기 일쑤였다. 낚시하는 시간보다 그걸 준비하는 시간이 몇 배나 더 걸렸다. 낚싯줄 매듭을 매다가 분통이 터져 던져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낚시는 나보다 차분하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푸념을 자주 내뱉었다.


나는 낚시뿐 아니라 야외 활동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아이 때문에 자주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부모가 되었으니, 아이가 원하는 취미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처럼 수업을 듣거나 클럽에 가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낚시는 쉽게 배울 수 없었다. 물고기가 있는 물가로 찾아가서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듯이 배워야 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근처에 낚시하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했다. 책이나 유튜브로 익힌 지식은 현장에 다 통하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남들한테 먼저 말을 걸다니. 낚시가 잘되지 않아 난감해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뭐라도 해야지 싶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성격도 변한다. 이제 낚시터에 가면 몇 마리 잡았고 미끼는 뭐로 썼냐고 말 거는 건 일도 아니다.


우리는 작년부터 몇 군데 호수를 돌며 낚시에 도전했다. 운이 아주 좋은 날이면 서너 마리를 낚은 적이 있지만, 대체로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더 많았다. 낚시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바로 옆자리 사람들이 몇 마리나 잡아도 우리는 구경도 못한 적이 흔했다. 비슷한 장소에 똑같은 미끼라도 어쩌면 그렇게 비껴가는지. 벌써 낚시 2년 차가 되었지만 배워야 할 것투성이다. 호수나 강마다 잡히는 물고기 성향이 다 다르다. 비오는 날에는 낚시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도 새로운 도전이다.


날이 밝자 우리는 근처 마을에서 비옷과 장화 등등을 차곡차곡 마련했다. 비 한 방울도 들어올 틈도 없게 단단히 무장하고 호숫가로 향했다. 어젯밤부터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 비로 낚시터 바닥은 물웅덩이로 뒤덮였다. 장화가 없었다면 물웅덩이를 건너 호숫가로 갈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이런 날씨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너덧 명의 사람이 아침 일찍부터 낚시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낚시에 미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한편으론 이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옷을 입고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은 보며 우리는 동료애를 느꼈다. 아이도 대단하다면 혀를 내둘렀다. 


어제 봤던 낚시 고수 한 명도 판초 우의를 입고 미끼를 바늘에 꿰고 있었다. 그는 브래드 피트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펼치던 플라잉피싱 기교를 현란하게 보여줬다. 그는 브래드 피트 같은 멋진 외모를 갖추진 못했지만 낚싯줄을 다루는 솜씨는 멋져서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게 했다.


낚싯줄을 앞뒤로 휘저으며 호수에 던지는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낚시줄 빗속에서도 수면을 스치듯 날아다녔다. 물고기가 절로 감겨들 것만 같았다. 거짓말처럼 우리낚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람 팔뚝보다 큰 송어를 대차게 낚아 올렸다. 우리는 쥐고 있던 낚시대를 놓고 구경하러 갔다. 이렇게 큰 물고기는 난생처럼 봤다며 아이는 감탄했다. 자기도 똑같이 큰 놈을 잡겠다고 잔뜩 흥분했다.


폭우 속에 낚시에 흠뻑 빠진 아이 © 류정화


아이는 전날에 써보겠다고 한 소시지 미끼를 달은 낚싯대를 호수에 힘차게 던졌다. 아이가 게임 컨트롤러만 매만지던 작은 손으로 낚싯줄을 능숙하게 던지는 모습이 내 눈에 낯설었다. 벌레가 무서워 밖으로 나오기도 두려워하던 녀석이 장대비를 맞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다니. 놀라운 변화였다. 아이는 물고기가 쉽게 잡히지 않자 미끼를 계속 바꿔가며 낚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은 외떨어진 자연 속에서 아이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폭우를 맞으며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기다리며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를 통해서 아이한테 길러주고 싶었던 '근성'과 '인내심'을 생각하지도 않은 낚시에서 찾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으니까 지치지 않는 근성이 저절로 생겼다. 아이는 몇 시간째 비를 맞으도 별다른 불평도 하지 않았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활동은 낚시가 처음이지 싶었다.


아이는 낚시터 일대를 순례하며 낚시대를 놓치 않았다. 깊숙한 숲으로 들어갔다가 낚싯줄이 나무에 걸리기도 했다. 낚싯바늘이 물 속 나무뿌리에 박혀서 낚싯줄을 끊어내야 할 때도 있었다. 짜증도 내지 않고 낚시줄을 다시 걸고 물고기를 찾아다녔다.


"비 맞아도 괜찮아?"

"물고기만 잡을 수 있다면, 비 좀 맞는 건 괜찮아."


우리는 반나절 이상 폭우를 맞으며 진흙탕이 된 낚시터에서 버텼지만, 결국 물고기는 한 마디도 잡지 못했다. 아이가 실망하는 기색은 역력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낚시를 비 속에서 후회없이 해봤으니까. 당장 물고기 몇 마리를 잡는 것보다 아이가 난관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찾아서 다행이다. 낚시 실력은 언젠가 늘기 마련이다.


울면서까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강하게 표현해준 아이가 고마웠다. 폭우 속에서 낚시를 해보니 해볼만 했다. 지레 포기하려 했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폭우도 끄지 못한 낚시에 대한 열정은 아이의 마음 속에서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아이의 가슴 속에 어떤 꿈이 자라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였다. 아이의 낚시광 꿈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일만 남았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유튜브에서 본 민물 가재 덫을 만들고 싶어 했다. 이번에는 가재를 잡으러 개울로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제는 비가 와도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림: 류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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