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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동협 May 19. 2021

코비드 격리 한달 후

낯선 세상에서 살아남기

코비드 격리 생활을 시작한  벌써  달이 넘어간다. 이러다가 벌써  년이란 소리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겠다.   만에 아이랑 아내랑 동네 산책을 다녀왔는데 어찌나 어색한지. 공원까지 걸어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30 정도의 산책이었는데 마치 마라톤을 뛰듯이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집안에 틀어박히면 어지간한 결심이 있지 않은  외출하기도 쉽지 않았다. 온라인 수업 시간에 아이 체육 선생이 내준 숙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덕분에 바람도   있었고 움츠린 마음도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학교 숙제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다양한 색깔이 들어간 사물의 사진을 찍어서 웹사이트에 올리면 된다. 주로 꽃 사진을 찍는 일이라서 어렵지 않았다. 숙제는 집 근처에서 대충 5분 만에 해결할 수 있었다. 정말 어렵게 바깥 외출을 나왔는데 이렇게 빨리 들어가려니 너무나 아쉬웠다. 게다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아이도 아쉬웠는지 집 주위를 부질없이 뱅뱅 돌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원이나 다녀오자고 의견 일치를 봤다. 아이는 아이대로 신나서 앞서 달려갔고 나도 뒤따라서 걸었다. 거리에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 사는 포틀랜드의 봄에는 비가 자주 내리는데 요즘은 이상하게도 비도 내리지 않았다. 쨍한 햇살을 맞으며 걸으니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덥다고 부채를 찾기 시작했다. 우체통에서 꺼낸 광고물로 부채 삼아 열심히 부채질해주었다. 그래도 녀석은 그늘만 보이면 주저앉아 쉬었다. 짧은 거리도 만만하지 않은 모양이다. 원래 체력이 약골인 녀석이라 끝까지 완주하기 어려울 조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겠냐고 물어보니 그건 또 싫다고 했다. 그 고집을 누가 말리나!


걷다가 쉬다가 다시 걸으며 느리게 공원으로 향하니 동네 구경을 오히려 더 잘할 수 있었다. 평일 오후인데도 집마다 차가 다 주차되어 있었다. 분명히 집 안에 사람들이 있을 텐데도 인기척이 별로 느껴지지 않아 이상했다. 다들 조용히 그렇게 집안에서 머물고 생존하고 있느라 바깥을 신경 쓸 겨를도 없는 모양이다. 주차된 차들의 미로를 피해서 목적지를 향해서 묵묵히 걸었다. 드물게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멀찌감치 다른 길로 피해 가고 있어서 마주칠 일도 별로 없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이 이제는 사람들 몸에 익어가고 있었다. 2m 거리를 두고 걷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가서도 2m 원칙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었다. 산책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래 이 동네 사람들의 특징이 눈만 마주쳐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그런 일상도 한 달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다. 이럴 때 보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이 실감이 된다.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느끼던 거리감에 사회적 거리까지 더해지니 그 거리가 더욱더 멀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존재하던 약한 사람들 사이의 고리를 갈라놓는 그 바이러스가 참으로 야속하다.


공원에 도착하니 놀이터가 제일 눈에 띄었다. 평소 같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미끄럼도 타고 그네도 탈 텐데. 놀이터에는 사용금지 표시를 크게 해 놔서 눈에 잘 들어왔다. 아이가 뛰어가려는 걸 말리느라 혼났다. 왜 놀이터에서 놀지 못하는지 한참 설명을 하느라 애먹었다. 아이는 이제 코로나의 코자만 꺼내도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놀던 공간이 그림처럼 구경만 해야 하니까 얼마나 답답할까. 나도 평소에 다니던 테니스장을 멍하니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이 격리가 얼마나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게 답답할 뿐이다.


복잡한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산책하러 다녀오니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마음도 새롭게 다지는 효과가 있다. 그동안 너무 겁을 내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나. 이렇게 가끔 짬을 내서 동네 산책은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이후에 달라진 일상의 변화가 한두 개뿐이랴. 아이 숙제로 시작한 산책이었지만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변화에 맞춰서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 그게 코로나 기간에도 살아남는 방법이다. 아이와 산책하는 시간은 더 자주 가져야겠다.


이 글은 코비드 격리가 시작된 후 한 달만에 쓴 포스트입니다. 그때만 해도 석 달이면 격리가 끝나고 정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산다는 게 그런 게 아닐까요? 알 수 없는 내일에 마음을 기대고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조차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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