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야간 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 버스를 타고 출발해 지하철로 갈아타고 지하철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다녔다. 토요일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 육아에 힘든 아내를 깨우기 미안해 바로 집을 나섰다. 지하철역에 내려 버스를 기다리다, 아침 공복에 출출해 허기를 달래고 싶었다. 역 주변에 편의점도 있었고 식당도 있었지만, 역 광장에 노점이 많았다. 구경도 할 겸 요기가 될만한 음식을 찾기 위해 광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선택의 폭이 있었으나, 짧은 시간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토스트로 아침을 정했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토스트를 팔고 있었다. 하나 달라고 주문하니, 바로 계란과 야채를 버무린 반죽을 익힌 후 식빵 사이에 넣어 종이에 싸주었다. 간단하지만, 만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주머니의 토스트 만드는 모습은 민첩했고, 하나하나의 동작은 기계처럼 정교했다. 숙련된 기술이었고,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전체 공정은 단순했지만, 짧은 시간에 똑같은 크기와 양을 맞춘 토스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오랫동안 수련이 필요했으리라!
식빵에 치즈나 햄 같은 걸 넣으면 가격이 이, 삼백 원 정도 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거리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는데, 맛도 있고 저렴하고 빨리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지날 때마다 매번 먹었다.
그러다 한 번은 토스트를 받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옆에 있는 통에 현금을 넣는 방식으로 값을 치렀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많은 사람 중에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주세요?” 갑자기 나에게 질문하여 당황했다. 나는 맞게 넣었는데, 돈을 많이 받았다니 무슨 뜻인지 몰라 “무슨 말씀이신가요?” 되물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넣은 돈을 꺼내 보여주었다. 금액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치러야 할 가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런 낭패가!” 오백 원짜리인 줄 알고 넣었는데, 백 원짜리였다. 예를 들어 1,600원이야 했는데, 1,200원이 들어가 있었다.
만일 아주머니가 “젊은 사람이 정신이 없다”라는 정도로 사람들 틈에서 꾸짖었다면, 난감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겠지만, 공개적인 자리였으므로 나에게 나쁜 언사를 했다면 적의에 찬 나머지 목소리를 높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주머니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여기며 지혜롭게 넘겨주었다. 나를 존중해 주며 나의 감정을 위해 배려해 주었던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손익은 결정적이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아주머니는 나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대처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고의로 그러지 않고 그냥 내가 실수했다고 믿어주었다.
아주머니의 배려는 상대방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에서부터, 믿음으로 출발했다. 밖에서 온종일 서서 힘들게 노점을 운영하면서 그 일로 속상하고 화도 날 수 있었지만, 감정을 이성으로 억누르며 슬기롭게 접근했다. 슬기로운 사람은 상대의 악의를 알아차리고도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다. 아주머니는 설령 내게 금액을 속이려는 악의가 있었다 할지라도, 나의 실수를 따뜻이 품으며 배려해 주었듯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두르지 않고 깊이 호흡을 고르며 악의 또한 헤아려 넌지시 짚어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아주머니의 넓고 깊은 마음을 읽으며 우리 세대의 어머니임을 느꼈다. 고단함을 잊은 채 삶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줄곧 매번 토요일 아침은 아주머니가 있는 노점으로 향했고, 관계에서 느끼는 배려는 나에게 토요일 아침을 맞이하면서 더 큰 활력을 주었다.
2013년 석계역에서 이야기를
20023년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