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밤만 자고 나면

by 전우 호떡

어느새 중년에 접어들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결혼 후 줄곧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아이들이 크면서 교육문제로 1년 전부터 떨어지게 되었다. 1년 전 떨어져 있었을 때는 주말에 집에 다녀올 수 있었는데, 몇 달 전 근무지를 옮기고부터는 집에 갈 형편이 어려워 가족이 다녀가곤 한다. 가족과 같이 살다가 떨어져 혼자 독립하고 보니 여러모로 힘들다. 첫째는 가족이 그립고, 그로 인해 외롭고 밥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다. 그러나, 자녀를 위해, 자녀의 교육을 위해 어렵지만, 이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와 며칠 지내고 간다. 오랜만에 와서 함께 지내다 보면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간절함과 애틋함이 더해져 만나고 몇 시간은 잘 지내게 된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이내 이전의 함께 살던 때의 투박함이 몰려오게 된다. 아내는 아이들 돌보느라 고생하고 힘들게 긴 시간 운전해서 오는데, 집안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는 나를 보노라면 흥분하게 된다. “여기 괜히 왔네요!” 갈등의 양상이 무르익다 아내가 폭발하며 통상하는 첫 번째 한 마디이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아내는 ‘당장 내려갈 거예요’라는 정도로 위기를 고조시킨다. 마지막 정점에서 ‘다시는 안 올래요’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아내의 이런 말들은 채찍보다는 나보고 좀 더 잘하라는 당근의 의미인 줄 이미 알고 있다. 혼자 지내는 내가 좀 더 부지런하기 위해 더 깨우치기 위해 한다는 걸 안다. 배웅해 주는 나에게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잘 지내라고 당부한다. 가끔 오는 아내를 보내면서 어릴 적 어머니가 고향에 가셔도 집을 비우신 때의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고향에서 생활하는 가족을 위해 어머니는 종종 고향에 다녀오셨다. 어머니가 안 계시면 집은 어두워졌고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만 기다렸다. 아버지가 밥을 해주시고 챙겨주셨지만, 어머니가 안 계시니 집이 잘 돌아갈 리가 없었다. 그 당시 전화도 없었고 단지 언제 집에 오니 몇 밤만 자면 된다는 마음으로 애타게 기다렸다. 어릴 적 어머니와 떨어지는 게 그렇게 싫었다. 이제 가장이 되었지만, 가족과 떨어지게 되면 혈육의 정이 더 깊어져 오히려 그때보다 기다림이 더 길게 느껴지는 듯하다. 특히, 결혼 후에 처음 떨어져 지낸 얼마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첫째 딸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아내의 고생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결혼하고 첫째를 러시아에서 낳아 비자 갱신을 위해 아내와 첫째는 방학 기간 한국으로 가서 두 달여 있다가 돌아왔다. 원래 한 달여 일정으로 갔었는데, 돌아오기 하루 전날 갑자기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되었다고 했다. 다음날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기로 계획했었는데 아내가 밖에 나갔다가 발목을 접 질러 2주간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하기에 내일 못 가게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지만 사람이 다쳤는데 치료가 우선이었다. 그런데, 발목을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았으나, 치료만 잘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만 했다. 전화기 너머 어머니는 옆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만 되풀이하셨다.

혼자 2주간의 시간을 더 지내야 하는 건 괜찮았으나 방학 기간 이렇게 오래 외롭게 지낸 염증에 짜증이 일었다. 그러나, 아내가 다쳤기에 이런 심정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 2주간 모스크바 근교에 나가 산책도 하고 기숙사 옆 호숫가를 달리고 더욱 알차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매일 아내와 통화하면 다친 발목은 그저 낫고 있다고만 했다. 그렇게 2주가 흘러갔다. 공항에서 아내와 첫째를 맞이했다. 아내는 발목을 다쳤지만 거의 두 달 동안 잘 지내다 왔는데 살이 쏙 빠져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아내는 부모님 모두 평안하시고 잘 지내고 왔다고만 하며 말을 아꼈다.

집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잠들어있는 첫째의 옷을 갈아입히는데 가슴에 이상한 자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슴의 한쪽 부분이 분명한 차이가 있을 만큼 피부색이 다르게 상처가 있었다. 아내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아내는 긴 한숨을 쉬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었다. 돌아오기로 계획된 하루 전날 어머니가 첫째를 돌보던 중에 드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잠시 주방에 간 사이 첫째가 커피잔을 건드려 바닥에 뜨거운 커피가 쏟아져 첫째의 온 가슴을 적시게 되었다. 아내는 외출 후 돌아와 문을 열자 어머니가 첫째를 안고 찬물에 씻기는 데 자지러진 첫째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길로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화상을 치료했다고 했다. 아내는 그 얘기를 하는 동안 눈가가 촉촉하게 적셔졌다.

신경이 예민한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전전긍긍하며 아무 일도 못 할까 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내는 다음날 다시 처가로 가 꼬박 2주간 병원 진료를 받고 왔다. 아내는 나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만나기 전까지 그 사실을 숨겼다.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에 그날 이후로 전화하시면 그저 울기만 하셨고, 첫째를 보기 위해 잠시 처가에 들르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내는 어머니가 첫째의 상처에 대해 아범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해서 나는 아내가 말하지 않은 듯 모르는 체했다. 아니 없었던 일로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9개월 된 첫째를 안고 뛰어서 바로 앞 병원에 가기까지, 화상을 치료하는 데 자지러지는 첫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내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헤아려 보지만 그만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일에 대해 꾹 참고 나에게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마 내가 그 소식을 들었다면 한잠 못 자고 발을 동동 굴렀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아내는 남편과 함께 나눠야 할 짐을 혼자 안고 이겨냈다. 혜량이 깊은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첫째의 상처는 자라면서 아물어져 티 하나 없이 깨끗이 나았다. 우리는 불문율처럼 지금까지 첫째의 화상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고, 상처가 아물 듯이 우리 마음속에도 흉이 지워졌기 때문이었다.

가정은 행복을 이루는 보금자리이며 우리 삶의 안식처이다. 가정에서 평안과 위로를 얻고 따뜻한 에너지를 받아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어릴 적 어머니와 떨어지게 되면 어머니가 오실 날이 몇 밤 남았는지를 세며 손꼽아 기다렸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이루어 이제 가정의 중심은 아이들을 위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내는 자녀의 학업을 고려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3, 4주에 한 번 오는 형편이다. 오늘 가족이 다녀간 후 이제 스무 밤만 자고 나면 가족을 다시 만나는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다.


2021년 가을 고성에서

작가의 이전글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