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기간은 결혼 후의 삶과 비교해서 상당히 짧습니다. 결혼 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공동생활을 할 수 없으므로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기 어렵습니다. 결혼 후 공동생활을 통해 서로의 가치관과 내면에 대해서도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연애하던 시절은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정도였습니다. 연애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갈등과 다툼, 지금도 잊지 못할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뒤돌아보면 우습고 왜 그랬을까 하지만 그때는 단순하지만은 않은 문제였습니다.
연애하는 시절에는 살아온 방식이 서로 안 맞아 때론 다투기도 합니다. 성격이 직선적이며 정해진 각본대로 가길 좋아하는 나는 매사에 계획대로 가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물론 계획이 달라지면 당연히 우발계획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되도록 최초 계획대로 가야지 하는 우둔함을 갖고 있습니다. 나의 방식을 고집하며 일어난 잊지 못할 2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연애할 때 매일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특히, 퇴근할 무렵 통상 1~2시간은 기본적으로 전화로 통화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밤에 전화 통화를 끝냈는데 보고 싶은 마음에 한 번 더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화해도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통화 끝나고 얼마 안 되어 전화했는데 안 받다니,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닌가?’ 시간이 지날수록 별의별 생각이 들어 걱정은 깊어만 갔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 전화가 연결되어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어제 전화 통화를 끝내고 모임에 가서 일부러 전화를 안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답변이 우직한 나의 성격에 기름을 더 부어 나는 그게 말이 되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지금은 일하는 시간이에요. 나중에 통화해요!” 그녀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녁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녀는 계속 통화를 뒤로 미뤘고 결국 밤에 통화하면서 조급해진 나에게 그녀는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사를 전했습니다. “그게 그리 문제가 되나요? 지금까지 저는 이렇게 살아왔어요!” 듣고 보니 그 말은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제 있었던 일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처음에는 흥분했던 나는 계속 듣게만 되었고, 그녀는 차근차근 설명하면서도 감정이 격앙되고 있었습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제 흥분의 주체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때 왜 그렇게 흥분했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설명하면서 그녀의 화를 겨우 누그러뜨려야만 했습니다. 통화는 몇 시간 동안 새벽이 되도록 계속되었고, 그날 야간전투의 상흔으로 인해 다음날 온종일 비몽사몽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활한 일상생활을 위해서 왜 충분한 수면이 필요한지 절실하게 배웠습니다.
한 번은 주말에 데이트를 위해 그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출발할 때 전화하고 언제 도착한다고 알려 주었는데, 집 앞에 도착해서 주차하고 전화했는데 이상하게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웬일이지? 이상하다!” 또 걱정이 들고 별의별 망상에 빠졌습니다. 1분이 1시간 같이 느껴졌습니다. 10분 후에 핸드폰 벨이 울렸고, 그녀는 미안하다며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 놓고 화장하고 준비하느라 못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방금 사건에 대해 갑론을박 토론이 시작되었는데, 나의 질책이 담긴 언성에 결국 그녀는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아니, 이건 아닌데! 아 어떡하지?” 미안하다고 했지만, 지금 벌어진 일에 후회가 더하면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나만의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집요하게 판정을 내릴 필요는 없었는데!” 그날 데이트는 당연히 망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일주일 동안 최선을 다해 거의 빌다시피 호소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녀의 마음을 겨우 돌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나의 맹세를 받아준 결과였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무슨 일이든지 모두 조급하게 생각하고 급하게 처리하면 탈을 보기 마련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에서부터 시작해서 남모를 배경이 있을 것이고, 타당하다고 판단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나의 기호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무조건 따져서는 안 됩니다. 따지기보다는 그 의도에 대해서 곰곰이 헤아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사정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녀에게 별일 아닌 일에 나의 급한 기질이 앞섰습니다. 결과적으로 서로의 기분도 상하고 에너지만 소모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고,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녀와 나는 성격이 다른 데다가 서로 기준이 달랐고, 이삼십 년 살아온 삶의 태도는 쉽게 변할 수 없습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이, 비슷하지만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름을 이해하고, 이해의 수준을 넘어 다름을 껴안았어야 했는데, 나의 현실은 다름조차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관계의 형성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나의 기준에 맞추려는 순간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들 부부의 성격은 서로 반대되는 게 더 잘 맞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다르지만 살면서 조화롭게 접점을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위해 맞추어 가며 조금씩 양보하게 됩니다. 어느새 서로의 성격이 반대로 되어 버린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포용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성격이 좀 급해진 아내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결혼하면 부부의 호칭은 ‘남편’과 ‘여보’가 됩니다. ‘남편’은 부인을 ‘여보(如寶)’라고 합니다. ‘같을 여’에 ‘보배 보’의 한자로 당신은 나에게 보배와 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부인은 남편을 ‘당신(當身)’이라고 합니다. ‘마땅할 당’에 ‘몸 신’의 한자로 나의 몸과 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부부의 호칭은 몸과 보석과 같이 늘 서로를 위하라는 의미이며, 그 위함의 시작은 서로를 온전히 그대로 이해하고 다름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내 몸과 같은, 보배와 같은 존재로 서로 다름을 껴안으며 서로에게 최고가 되려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그 관계 안에서 우리 부부는 다름을 껴안으며 성격이 결혼 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2019년 서울 동빙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