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익숙함

by 전우 호떡

부대를 옮긴 지도 어느새 한 달여가 되어간다. 부대 분류 결과로 이전에 한 번 근무한 경험이 있는 부대에 다시 근무하게 되었다. 예전에 한번은 보직을 분류할 때 이전에 근무했던 부대에 다시 근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다른 부대로 분류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이전에 근무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리라는 목적에서 이전에 근무했던 부대로 배치받게 되었다. 부대 분류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부대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적잖이 놀랐고, 이전에 함께 했던 부대와 지역의 익숙함보다는 당시 내가 몸담은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이내, 정들었던 터를 옮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잊고 또 다른 익숙함을 위해 한 발 나아가야 한다고 마음먹고, 지난날의 미련을 털어버리려 애썼다.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 조직을 이루는 사람, 환경, 그리고 시스템, 이 세 가지 요소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자리를 옮겨 적응하는 데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기에 전에 함께 한 사람들이 있어, 그분들 덕분에 익숙함을 찾았고, 함께하며 앞으로의 기대 또한 작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5년여 만에 다시 찾은 지역에 익숙함은 고향에 온 듯 포근함을 안겨준다. 돌아다니다 보면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오늘은 예전에 가보았던 계곡과 절에 운동 삼아 달려서 가보기로 했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 직선으로 뚫린 새로 생긴 도로로만 다녀 지역이 다소 낯설었는데, 오늘은 달리면서 옛 도로로 다니던 그 일대를 가보고 싶어졌다. 근처에 유명한 산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등산의 과정과 정상에 오른 기억은 있는데 도무지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등산의 출발지가 그 절의 입구였다는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며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던 이유였다.

마을을 지나 돌다가 국도가 펼쳐져 길의 가장자리인 인도로 달렸다. 이윽고 수백 미터의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경사는 가파르지 않았지만, 조금은 긴 구간을 올라가니 약간 힘이 들어 천천히 뛰었다. 뛰다 보니 바로 앞에 젊은 연인이 앞에서 걷고 있었다. 남성은 앞서고, 여성은 바로 뒤를 따랐다. 인도의 폭이 얼마 되지 않아 나란히 걷기에는 위험한 탓이었다. 둘 다 운동복 차림으로 미루어 애초에 운동을 목적으로 걸어가는 듯 보였고, 추운 날씨에 걸어서 보람을 찾으려 하나 생각했다. 그들은 같은 방향으로 같이 걸으며 대화는 없었지만, 함께 호흡하면서 동반자로서 서로의 온기를 품으며 앞뒤로 나란히 밝은 표정으로 향했다. 혼자 달리며 함께 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며 부러웠으나, 나도 연애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계곡으로 접어들면서 들어온 풍경은 예전 그대로였다. 예전에 차를 타고 많이 지나던 길이라 중간에 야영장, 카페가 보였고 변한 게 없는 듯 느껴졌다. 달리던 중에 전화를 받았다. 5년 전 근무할 때부터 알게 된, 지금까지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형님이 전화하셨다. 형님은 정월 대보름인데 오곡밥을 먹었는지, 지금 어디 있는지 묻는다. 이어서 따뜻한 밥을 지었는데 갖다주고 싶다며 운동하고 돌아오는 시간을 확인하기에 집에 거의 도착하는 시간을 알려주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한번 지나가 본 길을 다시 돌아보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방금 전에 언덕을 오르던 젊은 연인을 만났다. 소로를 따라 손을 붙잡고 나란히 걸으며 뭐가 그리 좋은지, 재밌는지 크게 웃고 있다. 나도 연애할 때 손 붙잡고 많이 돌아다니며 항상 웃었는데, 그 시절의 향수에 젖어 뛰는 발걸음에 기분이 좋다.

달리기는 나에게 숙련의 산물이 되었다. 처음에는 미지의 아득한 길을 달리다가 익숙해가며 부담되지 않고 편안하게, 낯설지 않고 아늑하게, 멀리 있지 않고 가깝게, 어렵지 않고 쉽게 느껴진다. 달리기는 나에게 성장을 위한 변화를 가져왔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 연습하면서 익숙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익숙함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처음에 낯선 영역이었던 달리기는 생각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었고, 행동으로 옮겨 달리면서 어렴풋한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가며, 이런 과정을 통해 신체적인 발달과 정서적인 성장의 실체를 배울 수 있었다.

내리막길에 속력을 내서였는지, 1시간 이상 달려서인지는 몰라도 도로를 내려와 무릎이 아파졌다. 건강보다 소중한 건 없기에 무리하지 않기로 해 그 길로 멈췄다. 무릎을 잡고 눌러주고 펴주고를 반복하며 몸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방금 전화한 형님이 누님 댁을 다녀오면서,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에 맞춰 나를 찾았다. 인생은 혼자일 때가 많은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고, 기억해 주고 훗날 찾고 그린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인 동시에 우리 삶의 깊은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누군가의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서로 기대고 기다리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본질적인 이유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뛰게 되면 역효과를 불러오기에 추운 날씨에 걸어가야 하는데, 구세주 같은 형님이 오셔서 추위로부터 나를 구해 주셨다. 차를 타고 가며 그간의 안부를 나눴다. 도시락에 오곡밥을 2인분이나 담았다고 하니, 그 풍요로움에 가슴에 모닥불이 지펴져 훈훈해졌다. 집에 도착해 도시락을 열어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오곡밥과 산채 나물을 보며 어릴 적 집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어머니가 해주신 오곡밥을 먹던 추억이 떠올랐다. 오늘도 홀로 식탁을 마주 앉았다. 매일 혼자 먹는 익숙한 저녁이지만, 오곡밥과 함께 정월 대보름에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느끼며 형님과 형님의 누님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질수록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익숙함 속에는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익숙함으로 경계를 놓치면 방심하게 되고 방관할 수도 있고, 방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자리를 옮기게 됨은 익숙함으로 안주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도록 해주었고, 또 다른 익숙함을 위해 머무르지 않고 정진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그 익숙함으로 함께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난 인연 속에서 더 깊은 감동을 나누고 있어 감사하며 행복할 따름이다.


2023년 2월 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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