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를 맞으면 사람은 묻게 된다. 어떻게 버틸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때 우리는 대단한 해결책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돌파구를 찾게 된다.
내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정책부서로 자리를 옮긴 뒤, 1년 가까이 이어진 시간은 위기라 불러도 과하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해 늦은 밤, 때로는 다시 새벽에 퇴근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하루 한두 번 아내에게 안부 전화를 하던 습관조차 사라졌다. 업무를 파악하고 처리하는 데 모든 정신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2주는 버틴다는 표현조차 사치일 만큼 정신없이 흘러갔다. 수면은 부족했고, 몸은 빠르게 무너졌다.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더니 입술 주변에 수포가 올라왔다. 병원에서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라며 쉬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쉴 수 없었다. 퇴근 종이 울리자마자 집에 돌아가 쓰러지듯 잠들었고, 다음 날 새벽, 다시 비틀거리며 출근 준비를 했다. 어느 날은 옷을 입다가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를 시작했다.
두 달 동안은 토요일에도 출근했다. 일요일에는 밀린 정리를 하고 회의록을 쓰느라 하루가 갔다. 부서원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늦게 퇴근하는지를 두고 농담처럼 경쟁이 붙을 정도였다. 삶의 균형은 무너졌고, 시간은 오로지 업무를 위해 존재했다. 그렇게 버티는 동안,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던 일들이 조금씩 손에 익기 시작했고, 두 달이 지나자 자정을 넘기지 않고 퇴근하는 날도 생겼다.
그 무렵, 나는 나만의 돌파구를 만들었다. 아침을 조금 더 일찍 시작하는 일이었다.
새벽 5시 30분,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에 집을 나섰다. 회관에 도착하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체력단련장으로 향했다. 굳어 있는 몸을 천천히 풀었다. 다리, 팔, 어깨, 목의 순서로 관절을 하나씩 깨우듯 움직였다. 이어서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몸에 열을 올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땀이 맺힐 즈음이면 몸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운동을 마치고 온탕에 몸을 담그는 몇 분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이었다. 뜨거운 물 속에서 눈을 감으면, 비로소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짧은 순간이, 하루를 버텨낼 힘을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충분히 잠을 자지 못했음에도,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돌파구였다.
회관에는 늘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한 직원이 있었다. 그는 옷장 열쇠를 건네며 “몇 번입니다”라고 또렷하게 말하곤 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의 태도에는 한결같은 성실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에게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고, 때로는 작은 음료로 고마움을 전했다.
어느 날, 그는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그는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의 태도는 오래 남았다.
그는 특별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정직하게, 성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결국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태도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분명 어둠의 터널과 같았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나는 나름의 돌파구를 찾았다. 아침의 짧은 운동과 온탕 속 몇 분의 침묵, 그리고 한 사람의 성실한 태도가 내 하루를 지탱해 주었다.
삶이 무너질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대단한 변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오늘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작은 반복. 그 작고 단단한 습관이 결국 우리를 터널 밖으로 이끈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그 시간들은 분명 나를 지나 더 나은 방향으로 밀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