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아내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번진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어느덧 3년째이지만,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마음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문다. 혼자서도 잘 지내지만, 아내와 함께 있을 때의 나는 더 즐겁고, 더 단단해진다. 그래서일까. 아내를 떠올리면 마음 한켠이 포근하게 데워진다.
사랑을 시작하던 때를 돌아보면, 그 감정은 늘 설렘으로 시작되었다. 만나기 전에는 이유 없는 기대감이 차올랐고, 만나고 나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짜증이나 싫증 같은 감정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사랑이란, 그렇게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보이게 만드는 힘이었다.
그녀와의 인연은 중대장 시절, 한 행정병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부대를 쉽게 비울 수 없는 상황이어서 처음에는 만날 수 없었고, 대신 전화로 서로를 알아갔다. 2주 동안 거의 매일 이어진 통화 속에서 나는 그녀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고, 웃음으로 답해주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 무렵의 나는 막연한 불안을 안고 있었다. ‘나는 결혼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어느 순간부터 현실적인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던졌던 짧은 한마디가 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혹시 누나 있어?”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지만, 그 이후의 삶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사진 속의 그녀는 단정하면서도 밝은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아직 만나보지도 않았지만, 왠지 좋은 사람일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만나기 전까지 이어진 통화는 우리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주었다. 지금 떠올리면 다소 어설픈 농담에도 그녀는 아낌없이 웃어주었다. 그 웃음은 꾸밈이 없었고, 그래서 더 따뜻했다. 나는 점점 더 그녀를 직접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날 그녀는 어머니의 것처럼 보이는 코트를 입고 나타났다. 첫인상은 수수했지만, 묘하게 마음이 놓이는 포근함이 있었다. 통화로 이미 익숙해진 탓인지,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 같지 않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식사를 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식사 후 그녀의 제안으로 근처 호숫가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았다. 메뉴판을 보던 나는 순간 놀라 목소리가 커졌다. “커피가 이렇게 비싸요?” 그녀는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좋은 곳에서 커피를 사고 싶었어요.” 그 말 한마디에, 그날의 풍경은 더 오래 남게 되었다.
돌아 나오는 길,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리고 너무 성급하게. 그녀는 놀란 듯 손을 빼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당황한 나는 뒤따라가며 말했다. “마음에 들어서 그랬어요.” 서툰 고백이었지만, 다행히 그녀는 걸음을 멈추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의 나는 그녀에게 그다지 좋은 첫인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짧은 머리와 마른 체형,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다시 만나기로 한 이유는, 통화 속에서 쌓인 기억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먼저 마음을 알게 된 시간 덕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2주라는 시간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를 이어준 준비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바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소리로 먼저 마음을 나눈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마음은 더 단단해졌고, 결국 우리는 1년 뒤, 부부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서툴렀던 첫 만남, 어색한 농담, 그리고 조금은 성급했던 손길까지.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진짜 같았던 순간.
어쩌면 인연이란,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툰 순간들을 지나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평범한 한마디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혹시 누나 있어?”
그 질문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