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바쁘다는 이유로 좀처럼 운동할 여유를 찾지 못했다. 바쁘다는 뜻은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유 없이 일한다는 의미에서는 그리 유쾌하지 않지만, 여유 있게 살다가도 정말 바쁘게 지낼 때가 있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운동할 수도 있지만, 어둠 속에서 뛰다가 다칠까 걱정되고, 무엇보다 낮에 일과를 망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거기까지는 실행하지 못했다. 얼마 동안은 여유를 찾으려고 운동을 위해 적어도 하루에 1시간을 내려고 노력했으나, 생각에만 그쳤다. 그러나 오늘은 그저 무거운 생각을 내려놓고 하고 싶은 바람을 가볍게 행동으로 옮겨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라는 명제를 찾았다.
달리기 코스를 정하느라 고민했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산으로 향하는 코스, 해변을 나란히 따라 도는 코스, 호수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 코스, 모두 좋은 코스이고 가고 싶은 코스였지만, 오랜만에 하는 달리기였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호수 둘레길을 선택했다. 일단 호수 주변 그늘이 잘 조성되어 시원하게 달릴 수 있고, 평지를 돌기에 부담이 덜한 2가지 이유가 컸다. 특히 둘레길을 따라 일렬로 선 수목들 사이 그늘은 바람과 함께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주리라 기대되었다.
잠깐 운동을 놓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아침에 몸무게를 재어보니 무려 2킬로가 늘어 있었다. 살을 찌우긴 쉬워도 빼기는 어려운 데, 땀으로 분출하지 못해 금방 살이 붙었다. 그렇다면 음식을 줄여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해 붙은 살이 저절로 빠지기란 바람과는 멀리 떨어진 현실이었다. 잠깐의 방심은 제방의 둑이 한순간에 무너지듯 비대해진 체중으로 이어져 요사이 잠자리에 누울 때 숨이 가빠오듯 호흡이 불편했다. 아침에 가볍게 일어나지 못했고, 온종일 이런 기운에서 둔탁한 몸으로 날렵하지 못했다.
준비운동을 했음에도 발목도 저리고 무릎도 뻐근하고 마디마디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운동한 탓에 몸이 무거웠는데,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실제 체중이 불어 그 하중은 그대로 무릎과 발목에 영향을 끼쳤다. 조심조심 움직여 천천히 몸을 풀면서 열기를 불어넣으며 어느 정도 뛰다 보니 항상 달리던 때의 상태로 돌아온 듯 가볍게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달리던 근성을 다시 바로 찾았다. 몸이 솔직하게 과거를 기억해 안정되고 편안하게 달리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요즈음 철저히 혼자 뛰는 편이다. 함께 하는 동료를 찾기 어려운 형편에 누군가를 찾지 않고 혼자 뛰는 게 일상이 되었다. 같이 호흡하고 속도를 맞추면 함께 하기에 쏟아야 하는 힘이 분산되듯이 묘한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반면에 혼자서는 어렵지만, 이 현실을 당당히 받아들여 즐기고 있다. 혼자 뛰면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고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면서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어 좋다. 누군가에 맞춰가야 하는 부담을 지운 채 혼자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외로움과 힘겨움은 상쇄되는 듯하다.
천천히 뛸수록 건강에 좋다고 한다. 사람의 심장은 대부분 분당 60~100회 정도 뛰는데, 심장 박동 수가 60~70을 넘어가는 고강도 운동은 당장 급격한 에너지 소모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강도 운동은 급진적인 출력을 요구하지 않고 잔잔하고 부드럽게 움직여 신체의 조직을 활성화하고, 지방 연소에도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 힘든 운동으로 단련된 사람은 어려운 조건에 몸이 적응하여 분당 심장 박동 수가 50회 이하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천천히 달리면서 서두르지 않는 철학을 몸소 배우고 있다.
인생을 받아들이는 객체로서가 아닌, 살아가는 주체자로서 숙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자신을 위해 애써야 하는데, 정작 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바쁘다고,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조직을 위해, 대의를 위한다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위해, 자신의 취미나 장기를 위해 하루 24시간 중 적어도 1시간 정도는 써야 한다. 이를 통해 즐거워지고 활력이 생겨 가정과 사회를 위해 더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몰입하며 성장하는 시간으로 활용한다면 그 1시간이 남은 23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
그저 ‘빨리빨리’를 외치며 이해관계 속에서 앞만 보며 왔는데, 이제는 하루 1시간 여유를 찾으며 달리고 있다. 서두름은 충분히 생각하지 못함을 의미하고, 완벽하지 못하고 서툴러지는 결과를 낳는다. 달리는 동안 나에게 ‘서두름’은 없다. 강요나 강제가 아닌 동기에서 스스로 조절하니 급하지 않게 임한다. 천천히 몸은 뛰고 있지만, 머리와 가슴은 쉴 수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가 뭔가 뚫린다는 느낌으로 가벼워진다. 하루 1시간 달리기를 통해 머릿속의 굳어있는 찌꺼기를 걸러내고, 가슴 안에 차 있는 응어리를 뱉어내 막혀 있는 가슴이 트인다. 이렇게 달리며 생각하려 하지 않는데 생각이 드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루 1시간 달리기는 홀로 천천히 휴식하는 시간이다. 지치고 힘들 때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데, 하루 1시간 달리기는 에너지를 쓰면서도 동시에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일과 휴식의 조화, 잠자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도 중요하지만, 하루 1시간 달리면서 뜨거워진 머리와 가슴을 식혀 줄 수 있어 다시금 기운이 생겨난다. 인생이 혼자 뛰는 마라톤과 같은 자신과의 전투 속에서 흘러가듯이 오늘도 자신과의 전투에서 격전을 치르고 이기고 돌아왔다는 사실에 뿌듯하다.
20023년 가을 공현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