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무실에 새로운 직원 한 분이 오셨다. 연배는 있었지만 젊어 보이는 인상에, 오랜 시간 삶을 건너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여유와 경륜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늘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찰리 채플린의 말,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분의 웃음에는 삶을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묵직한 여유가 담겨 있었다. 넉넉한 성품에서 비롯된 온화한 말투는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그런 첫인상 덕분인지 우리는 금세 서로의 일상을 나누게 되었다.
출근길의 인사는 형식적인 눈인사가 아니었다. 서로를 향해 가볍게 목례하며 안부를 물었고, 전날의 저녁과 가정에 별일은 없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하루하루의 소소한 이야기가 쌓이면서 관계는 조금씩 깊어졌다.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정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특히 자식을 키우는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미 자녀를 성장시킨 그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덕담을 넘어 삶의 조언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그분의 휴대전화 앨범에서 딸이 첫 월급을 받아 아버지에게 용돈을 보내며 쓴 손편지를 보게 되었다. “아빠, 늘 생각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말고 건강 잘 챙기세요.”라는 문장에는 담백하지만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편지를 읽으며 ‘부모의 삶은 결국 자녀의 삶에 스며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에게 건넨 사랑은 시간이 지나 다시 효심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그분의 딸이 보여준 마음은, 그분이 살아온 태도의 자연스러운 결실처럼 느껴졌다.
그분에게서 내가 가장 크게 배우는 점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그분은 늘 나를 칭찬하고 격려한다. 일이 잘 풀릴 때는 결과보다 과정의 노력을 먼저 인정해 주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상황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다시 해볼 수 있다고 말해 준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외부에 두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두는 그분의 시선은 나를 불안보다 신뢰 쪽으로 이끈다. 그 말들은 어느새 나에게 확신이 되었고, 스스로를 믿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용기란,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인정받고, 믿음을 얻으며 살아간다. 사마천의 『보임소경서』에 나오는 “사위지기자용(士爲知己者用)”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마음을 다한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성별이나 역할을 떠나,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향한다. 직장 동료인 그분을 통해 나는 이웃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소중한 인연 앞에서는 계산보다 믿음이 먼저임을 다시 깨닫는다.
그분은 삶이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이 잘 풀릴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늘 변화하고,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어긋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분은 “그래도 결국은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그런 태도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힘들고 지칠 때, 누구나 기대고 싶은 언덕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분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이제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언덕이 되고 싶다. 무조건 좋게 봐주고, 잘 될 것이라 믿어주는 사람. 함께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그 마음을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사회도 조금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그분을 통해 배운 믿음과 격려를, 이제는 내가 건네고자 한다.
2019년 서울 종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