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족이 있는 집에 다녀오고, 월요일 연휴를 맞아 함께 내가 지내는 관사로 향했다. 집을 나서는데 비가 내려 우산을 챙겼다. 아내는 지난번 내가 건넨 큰 우산을 찾다가 없다는 걸 알았다.
“이번엔 진짜 또 누구지?”
아내는 우산이 또 사라졌다며 혼잣말하며 언짢아했다. 식구 중 누군가가 쓰고 제자리에 두지 않았을 거라며, 결국 다른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에 도착해 나는 아내에게 지난주에 산 자전거를 보여주겠다며 자전거 정거장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자물쇠를 채워 두었던 자리였다. 순간 머릿속을 더듬다 지난주 금요일이 떠올랐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가, 퇴근할 때는 걸어서 돌아왔던 날이었다. 자전거는 그대로 그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이없기도 하고, 아내 앞에서 정신없는 모습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더 미안해졌다.
아내는 걱정이 앞섰다.
“앞으로도 이러면 어떡해요?”
예전에는 안 그랬다며, 요즘 들어 총기가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커피숍에서 방금 한 말을 잊고 주문을 번복한 일, 몇 번이나 들은 약속 시간을 잘못 기억한 일들이 차례로 소환됐다. 이제는 건강을 더 챙겨야 한다며, 음주도 줄이고 조심하라는 말이 이어졌다.
저녁을 먹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아침에 찾던 우산은 사실 신발장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내가 준 우산을 관사에 가져갈 생각으로 넣어두고는 깜빡 잊었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웃었다. 크기와 값어치는 달랐지만, 잊어버렸다는 사실 앞에서는 피장파장이었다.
비슷한 기억이 떠올랐다. 작년 말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주쳤다. 그는 나를 몹시 반갑게 맞으며 “여기 계셨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처음 만난 사람처럼 다시 인사를 건넸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그 사실이 공허하게 남았다.
기억력은 때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전방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부대원은 오백 명이 넘었다. 어느 날 마트에서 병사를 면회 온 부모님을 만났고, 나는 병사의 이름을 불러 인사했다. 그 뒤로 들려온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대대장님이 어떻게 네 이름을 다 아시니?”
사실 모든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 다만 알려고 애썼고, 그 노력 덕분에 그 병사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최근의 일들을 곱씹어 보니, 기억력보다 더 큰 문제는 집중이었다. 커피 주문을 번복한 것도, 약속 시간을 혼동한 것도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앞서가면 귀는 닫히고, 관계는 그만큼 헐거워진다. 나와 관계한 사람들은 내 삶과 연결된 이웃인데, 나는 그 연결을 가볍게 다뤄왔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은 자연히 흐려진다. 그래서 지금은 더 집중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집중은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태도이자, 관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성의다. 이야기의 내용뿐 아니라 그 말에 실린 감정을 함께 듣는 일, 그 안에서 공감이 비로소 자란다.
잊어버린 것은 자전거와 우산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때때로 사람의 말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번 일들을 통해, 관계를 위해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억하려는 노력, 귀 기울이는 태도, 그 작은 집중이 관계를 다시 아름답게 빛나게 만든다는 사실을.
2024년 6월 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