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을 달리면서

by 전우 호떡

집에서 주말을 보내면 어김없이 1~2킬로그램의 살이 찐다. 그래서 관사로 돌아오는 일요일 오후에는 더부룩한 기운을 털어내기 위해 더 열심히 달리게 된다. 게다가 돌아오는 길에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빵으로 출출함을 달랐더니 포만감은 더했다. 결국 완전히 소화되기를 기다려 서너 시간을 보내고서야 밤길로 나섰다.


나는 나를 비워내기 위해 달린다. 몸속의 지방을 태워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 쌓인 고민과 번뇌를 걸러내고 떨쳐내기 위함이 더 크다. 마음의 평온함을 얻고자 달린다. 성격상 별일 아닌 일에도 마음이 앞서고, 주변의 의견에 집착한 나머지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달리며 불필요한 시름의 잔상을 떨쳐내려 애쓴다.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를 받쳐주고, 주위에는 건물과 나무가 서 있을 뿐 사람의 기척은 없다. 가끔 차 몇 대가 스쳐 지나간다. 나는 대지와 풍경을 벗 삼아 그들을 지나친다.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나의 움직임으로 인해 앞과 뒤의 배치가 달라진다. 마주 서 있던 풍경은 목표가 되어 다가오고, 이내 내 뒤에 놓인다.


적막 속에서 가로등 불빛을 이정표 삼아 달린다. 초급 장교 시절, 훈련 중 어둠 속에서 부대를 이끌고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몇 번이나 다니던 길이었지만 방향을 잃고 헤매다 동이 터서야 겨우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겨울 오후 네 시에 산에 올랐다가 정상에 도착하니 다섯 시가 되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간신히 내려왔다. 그 빛이 없었다면 나는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굴러떨어졌을 수도,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처럼 소중한 사람을 떠올린다. 내 삶의 방향을 안내해 온 이정표 같은 존재, 아내가 생각난다. 선택은 언제나 내가 했지만, 그것은 아내가 나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아내는 믿음으로 나를 지지하며 나를 이끌어 주었다. 홀로 있을 때도, 혼자 달릴 때도 나를 아끼고 믿어주는 사랑을 떠올리며 감사함으로 적적함을 달랜다. 혼자 달리는 시간마다 아내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위안은 고요한 안식으로 다가온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사랑하는 두 딸 역시 언제나 벅찬 감격으로 다가온다. 두 딸의 표정과 행동 속에 나의 흔적이 배어 있듯, 가족으로서의 동질감은 나에게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그 책임을 다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실의에 빠질 때 두 딸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쉰 번째 생일을 맞아 두 딸은 케이크에 ‘다시 태어나도 아빠 딸’이라는 문구를 적어 주었다. 그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카카오톡 메인 화면에 올렸고, 나 역시 마음속에 ‘다시 태어나도 사랑하는 두 딸의 아빠’라는 말을 새겼다.


늘 같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해 온 가족도 떠오른다. 아버지는 지금 곁에 계시지 않지만, 기쁘고 또 치열하게 어려운 순간마다 늘 함께해 주신다. 이번 명절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하나같이 나의 낯빛을 살피며 안부를 물었다. 나의 숨은 속내를 알아보고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부모님의 은덕과 형제자매의 보살핌은 흔들리던 나를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 한때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누구 하나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모두가 괜찮다고 했고, 정말로 아무 일 아닌 것처럼 괜찮아졌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며 달리는 이 시간은, 힘겨움 속에서도 마음만은 편안한 쉼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계속 달리게 된다.


빛이 소중한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대비 속에서 빛은 비로소 빛난다. 나에게도 어두운 시기가 있었다. 토마스 칼라일은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어둠의 터널은 지난한 여정이었지만, 언젠가 끝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견뎠다. 지나오고 보니 그 어둠은 나의 내면을 더 넓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둠을 통과한 경험은 앞으로의 어려움 또한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되어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는 달릴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빛을 따라 달린다. 그 빛을 좇아 달릴 때, 얼굴에 와 닿는 한기는 내가 살아 있음을 또렷이 일깨운다. 생과 사는 호흡에 달려 있고, 호흡을 통해 나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하, 하, 하, 하.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며 심장의 박동과 함께 온몸이 데워진다. 찌뿌둥한 기운은 사라지고 열정의 에너지로 채워진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오히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그 신비는 곧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다시, 어둠 속에서 빛을 따라 달릴 내일을 기약한다.



2024년 12월 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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