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품위

by 류하 스텔라


하루가 저물어 갈 때면,

빛이 천천히 방 안으로 스며든다.

그 느린 속도가 요즘은 좋다.

마음이 따라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라서.


예전의 나는 늘 바빴다.

하루를 채우지 않으면 불안했고,

쉬는 시간에도 뭔가를 해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안다.


노년의 품위는

더 많은 것을 이루는 데 있지 않다.

이미 내 안에 들어온 것들을

어떻게 다루는 가에 달려 있다.


나는 이제 마음의 초점을 좁히고 있다.

흩어진 관심을 거두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사물에

조용히 시선을 머문다.

그 안에서 삶의 온도를 느낀다.


젊을 땐 앞만 보느라

놓친 것들이 많았다.

빛이 드는 창,

차 한 잔의 온기,

누군가의 짧은 안부 같은 것들.

이제야 그것들이

삶의 품격을 만들어준다는 걸 안다.


욕망에도 예산이 있다.

젊을 때는 초과지출을 즐겼지만

이제는 기쁨이 오래 남는 것에만 쓴다.

시간을 쓰는 방식이 바뀌니

삶의 결도 달라졌다.


몸이 가르쳐 준 예의도 있다.

내일의 나에게 빚을 지우지 않기.

통증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신호로 받아들이기.

할 수 있는 만큼보다

지켜야 할 만큼만 하기.


관계도 숫자가 아니라 온도로 남는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작게 미소 지어도,

따뜻함이 전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품위의 모양이다.


젊음은 여전히 빛나지만,

나는 이제 그 빛을 멀리서 바라볼 줄 안다.

손에 쥐지 않아도 따뜻한, 그런 빛이다.


이제 삶은 더하기보다 편집의 기술을 요구한다.

남겨둘 문장과 지울 문장을 가려내는 일,

하루의 문맥을 흐리지 않게 쉼표를 놓는 일.

그 편집이 곧 나의 태도다.


시간이 내 얼굴을 바꾸었을지라도

나는 환대의 마음으로 그 변화를 맞이하고 싶다.

오래된 흔적을 부끄러움이 아니라 이력으로,

느린 걸음을 결함이 아니라 리듬으로.


노년의 품위란,

하루를 크게 외치지 않고 정확히 말하는 법이다.

남은 날을 계산하지 않고,

이미 지나간 일을 증거로 들지 않으며,

오늘의 나를 과장 없이 살아내는 일.


그래서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정확해지고,

조금씩 따뜻해지고,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