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천국은 문이 열리고 있었다.

by 유혜빈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몇 년을 요양원에서 보내셨다.

한 번도 가족과 떨어져 지내신 적 없던 분이기에,

그 시간은 얼마나 외롭고 낯설었을까.


아빠는 그런 할머니가

편히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할머니께 가장 잘 맞을 만한 곳을

오랜 고민 끝에 정하셨다.


자주 오가기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아빠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누구보다 자신을 그리워하실 거란 걸

이미 알고 계셨다.

아빠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요양원을 찾았다.

불편한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말벗이 되어드리곤 하셨다.


온 가족이 함께 방문한 날에도

할머니의 시선은 유독 아빠에게 오래 머물렀다.

그저 말없이, 한없이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


그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빠가 출근하던 아침이면

할머니는 늘 베란다 너머로 뒷모습을 지켜보셨다.

그 그림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그대로 서 계셨다.


그 순간의 할머니는

우리의 ‘할머니’가 아니라,

오롯이 아빠의 ‘엄마’였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들에게 엄마는 늘 ‘마음의 자리’였고,

엄마에게 아들은 늘 ‘가슴 한 편의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병세가 갑작스럽게 악화되었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이별이 곧 찾아올 거라는 걸.


할머니를 마주한 순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할머니는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왜 울어, 괜찮아.”

“미안해… 할머니..”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날 이후, 후회라는 감정이

마음 깊숙이 고여 흐르기 시작했다.


더 자주 찾아뵐 걸,

사진도 많이 찍어둘걸.

무엇보다 바쁘다며 서둘러 끊어버렸던 그 전화…

그 뒤로 다시 연락드리지 못했던 것까지.


“바쁘지?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그럼 나중에 시간 날 때 그때 전화혀

할미는 암때나 괜찮여.. “


아마 할머니는 그저 목소리가 듣고 싶으셨을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을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어느 봄날.

햇살이 고요히 내려앉던 날,

할머니는 조용히 하늘로 떠나셨다.


장례식장엔 찬송이 울려 퍼졌다.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살아오신 분.

기도와 찬양 속에서 보내는 마지막 인사는

더없이 평온하고 따뜻했다.


슬픔보다 감사가 컸다.

아쉬움보다 평온이 더 가까웠다.

마치 정말로,

할머니가 천국으로 들어가고 계신다는 느낌이었다.


장례식장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찬양은 멈추지 않았다.

그 멜로디는,

정말로 천국의 문이 열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할머니는 이제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온 하나님 곁에서

환히 웃고 계실 것이다.

더 이상 외롭지 않게,

아니,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지금도 문득, 할머니의 방이 떠오른다.

작은 TV 소리, 펼쳐진 성경책,

그리고 다 쓰다 만 수첩.


남겨진 건 많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조용하지만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사람.


그렇게, 사랑은

또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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