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우리는 오래된 기억을 다시 찾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해 겨울,
우리는 아빠의 외갓집을 찾았다.
엄마, 아빠,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까지…
세대를 건너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에게
시골 풍경은 낯설고 신기한 놀이터 같았다.
군데군데 흩어진 집들과 끝없이 펼쳐진 논밭.
도시의 빽빽한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외갓집이 가까워질 즈음,
아이들이 창밖을 보며 소리쳤다.
“할아버지! 방금 코끼리 소리 들었어요!
시골엔 코끼리도 있어요?”
“코끼리는 무슨… 잘못 들은 거겠지.”
“아니야, 진짜야!”
그건 코끼리가 아니라, 외양간의 소였다.
도시 아이들의 눈엔
외양간 사이로 고개 내민 소들이
동물원보다 더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 순간, 낯선 시골 풍경이
아이들 눈엔 한 편의 동화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이 집은,
아빠가 어린 시절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곳이다.
나 역시 방학이면
늘 아빠 손을 잡고 이곳에 놀러 왔었다.
십수 년이 지나 다시 찾은 이곳은,
묘하게도 여전히 따뜻하고 정겨웠다.
아빠의 외삼촌,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분은 해마다 가을이면 손수 농사지은 쌀이며,
단감, 밤을 담아 보내주시곤 했다.
아빠는 그걸 늘 자랑처럼 말씀하시며
정성껏 나눠주셨다.
할아버지는 놀라신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 꼬맹이가 벌써 엄마가 다 됐네.”
어릴 적 코찔찔이던 내가
이제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이곳을 찾은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곳이 무척 신기했는지
풀숲에서 놀던 강아지들을 따라 마당을 뛰어다녔다.
시골 강아지들도 오랜만에 사람을 본 듯
꼬리를 흔들며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녔다.
어느새 마당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나의 어린 시절, 이곳은
서울의 놀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놀이터였다.
여름이면 경운기 뒤칸에 나란히 앉아
논두렁 사이를 씽씽 달렸고,
마당 한쪽 우물가에서는
들통에 물을 받아 서로에게 퍼부으며
햇살 속에서 실컷 물장난을 쳤다.
젖은 옷은 대나무 장대에 걸려 바람에 펄럭였고,
머리카락은 금세 햇살에 말라 부드럽게 흩날렸다.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들판을 지나
산에 올라가 나뭇가지로 밤송이를 툭툭 쳐서 주워 왔다.
까끌한 껍질을 조심스레 벗기고
반짝이는 밤알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분은
마치 작은 보물을 찾은 것처럼 설레었다.
밤이 깊어가면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군고구마와 밤을 까먹으며
입김을 호호 불고,
그 위로 수 놓인 별빛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서울 하늘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별들이
시골 밤하늘엔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조용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상하게 평화로워졌다.
겨울이면 창고에서 쌀포대 하나를 꺼내
마을 뒷산 언덕 위로 올라갔다.
누구보다 빠르게 눈길을 미끄러져 내려오며
깔깔 웃던 그 순간들…
눈이 목덜미 안까지 들어가도
신나서 벌떡 일어났고,
넘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땐, 세상이 눈처럼 포근하고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 같다.
다만, 시골의 밤은 조금 무서웠다.
전깃불 하나 희미한 골목,
하늘은 까맣고 소리는 고요했다.
깜깜한 밤중 푸세식 화장실에 갈 땐
할머니가 꼭 함께 가주셨다.
“겁날 거 없어, 할미가 옆에 있잖아.”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불빛이었다.
이번 겨울, 아이들과 다시 찾은 할아버지의 외갓집은
아빠의 추억과 내 어린 시절,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까지 품고 있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그 마당 흙냄새, 물소리, 바람결은 여전했다.
그 집도, 그 마당도, 그 하늘도
우리가 다시 올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조용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곳은 그냥 한때의 추억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세대에서 세대로
마음에 남는 풍경이 되었다.
어릴 땐 그저 아빠의 고향이었고,
지금은 아이들의 기억이 되었으며,
나는 그 사이에서
가만히 한 조각의 시간을 껴안았다.
세월이 흘러도,
그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의 기억을 품고,
다음 추억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