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많지,
저런 집에 맏 며느리로 들어가다니.”
예쁜 소녀였던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을 가슴에 품고,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가문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가셨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했고,
그 삶은 겉보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그 시절 할머니는,
정말이지 눈부신 여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두 딸을 낳고, 기다리던 아들을 품에 안은 뒤
할머니는 너무 이른 이별을 맞이하셨다.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신 것이다.
남편 없는 넓은 시댁살이는 아무리 든든해 보여도,
세 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엄마에게는
매일이 버티는 일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결국, 세 남매를 데리고 조심스레
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셨다.
아마 그것은 할머니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가장 큰 고비였는지도 모른다.
다정한 가족 속에서 보호받던 딸이었고,
모두의 기대 속에서 존경받던 며느리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모든 책임을 품은 어머니로서
스스로의 삶을 다시 꾸려야만 했다.
다행히, 고민 끝에 찾아간 친정은
할머니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할머니는 그 품 안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세 아이를 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아빠는 외갓집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함께 웃고 뛰놀던 외사촌들,
늘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던 외삼촌의 온기 속에서
그 시절의 기억은
아빠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안식처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은 또 다른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중학생이 된 아빠는 서울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아빠의 할아버지께서
장손의 미래를 위해 부르신 것이다.
그렇게 아빠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고,
새로운 풍경 속에서 낯선 도시에서
모두의 기대를 등에 업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할머니는 또 한 번 마음을 다잡으셨을 것이다.
아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건
할머니에겐 상상도 하기 힘든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작은 손을 흔드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그 뒷모습을
마음 깊이 꾹 눌러 담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 앞에서는 담담하셨을 것이다.
흔들리는 눈빛 하나조차 보이지 않으려
웃어 보이며 말했을 것이다.
“엄마는 괜찮아.
우리 아들만 잘되면, 엄마는 그걸로 충분해.”
세상이 흔들려도 할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단단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아빠는 빛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었고,
나는 지금, 그 길의 끝자락에서
그 사랑을 글로 되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