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의 맛은 아직도 따뜻하다

by 유혜빈


어릴 적 나는 유난히 토실토실한 아이였다.

볼이 동글동글하다 못해 빵빵했고,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말했다.

“얘 좀 봐라,

얼마나 잘 먹는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나는 그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주어지는 음식마다 남김없이 싹싹 비웠고,

어른들은 그 모습이 귀엽다며

늘 무언가를 손에 쥐여주셨다.


내가 애기였을때는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어른들은 분주해졌다.

“배고픈가 보다, 얼른 우유 좀 데워봐.”

우유를 꿀꺽꿀꺽 마시고 나면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긋 웃었고,

그 웃음 하나에 온 집안의 기운이 화목해졌다고 했다.


외갓집은 끝없는 맛의 놀이터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식탁 위엔 이모가 사 온 간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밤늦게 들어온 삼촌은

군고구마 알바를 마치고 남은 고구마를

내 머리맡에 살짝 올려두고 가곤 했다.

그걸 발견한 아침은 꼭 선물이라도 받은 듯 신이 났다.


할머니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부엌에 서 계셨다.

말 한마디면 뚝딱,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상에 올랐다.

“할머니, 김치찌개 먹고 싶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엌에서는 벌써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방을 가득 채운 향긋한 김치 냄새에,

괜스레 배가 더 고파지던 순간이었다.


할아버지의 퇴근도 기다려졌다.

양손 가득 종이봉지를 들고 들어오시며 외치셨다.

“치킨 왔다!”

봉지를 열면 바삭한 튀김옷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나는 그걸 받아 웃으며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보다,

할아버지의 손길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먹고, 자고, 놀고…

외갓집에서의 하루는 그 세 단어면 충분했다.

아무 고민도, 눈치도 없던 시절.

아침에 눈을 뜨면 밥 냄새가 났고,

밤이 되면 이불속까지 간식 냄새가 따라 들어왔다.

구수한 된장찌개, 지글지글 김치전, 새콤한 비빔국수, 따끈한 묵은지 볶음…

할머니 손끝에서 나온 음식은

하나같이 다정하고 따뜻했다.


그 사랑은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외갓집으로 자꾸 발길이 향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입맛을 기억하고 계셨고,

할아버지는 변함없이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마당을 지나오셨다.


그곳에서는

하얀 밥에 묵은지 하나만 얹어도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고,

비 오는 날이면 김치전과 수제비가

자연스럽게 상에 올랐다.

할머니는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날엔 이게 최고지.”


그 손길로 만든 음식은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맛이었다.

나를 위해 끓이고, 나를 위해 덜어주고,

식지 않도록 내 밥그릇 위에

살포시 뚜껑을 덮어두시던 그 마음.

그 한 끼 한 끼엔

늘 사랑이라는 재료가 듬뿍 들어 있었다.


지금은 그 부엌도, 그 마당도,

따뜻한 손길도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그날의 냄새와 그 손맛은

아직도 내 기억 속 어딘가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외갓집의 맛은, 아직도 따뜻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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