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이모와 삼촌들이 학교에 가고 출근을 하면
집 안엔 할머니와 나, 단둘이 남았다.
할머니가 집안을 정리하시는 동안
나는 늘 마당으로 나갔다.
장독대 옆에는 나만의 살림살이가 펼쳐졌다.
풀밭에서 작은 꽃잎을 따고, 잎사귀를 뜯어
깨진 그릇에 곱게 담아냈다.
수돗가에서 바가지를 채워 물을 담아 오고,
모래는 밥처럼 수북이 담았다.
풀잎은 반찬이 되고, 꽃은 디저트가 되었다.
나는 할머니 흉내를 내며 조용히 상을 차렸다.
이쪽에는 국, 저쪽에는 나물.
한 상 가득, 나만의 밥상을 차려내면
어느새 마당은 작은 식당이 되었다.
예쁘게 상을 차려내면, 그날의 손님은 개미들이었다.
장독대 주위를 바쁘게 오가는 녀석들을
조심스럽게 잡아
내가 만든 작은 화단에 옮겨 앉혀놓고,
“어서 오세요.” 혼잣말로 손님을 맞이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면 지렁이까지 손님이 되었다.
기어 나오는 녀석들을 나뭇가지로 살며시 들어 올려
꽃 옆에 내려놓았다,
화단 옆에는 내가 심어둔 봉숭아가 자라고 있었다.
작고 여렸던 줄기 끝에 분홍 꽃망울이 처음 피던 날,
나는 할머니보다 먼저 발견해 자랑하듯 외쳤다.
“할머니! 꽃 폈어!”
“그래 자기 전에 손톱에 예쁘게 물들이자”
장독대 근처엔 파리가 많았다.
파리채를 들고뛰며 한 마리씩 잡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잡았다, 또 잡았다!” 소리치며 놀던 나를,
할머니는 웃으시며 바라보셨다.
“잘한다, 파리가 다 도망가겠네. “
대문 앞에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가족들에게는 얌전했지만,
나에게는 유독 으르렁거렸다.
나도 지지 않고 간식을 들고 녀석을 놀렸고,
녀석이 짖으면 나도 같이 짖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 한 번은
그 녀석의 목줄이 풀려 달려든 적이 있었다.
결국 할아버지에게 혼쭐이 나고 난 뒤로는
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마당 한쪽에는 빨랫줄이 길게 걸려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고무대야에 이불을 담그고,
두 발로 꾹꾹 밟았다.
물결이 철썩이고 거품이 일면 그 자체로도 신났다.
빨래를 짤 때면 양쪽을 잡고
“하나, 둘, 셋!” 외치며 돌돌 말아 꼭꼭 짰다.
햇살이 가장 잘 드는 마당 한 복판,
넓게 널린 이불들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뛰어다녔다.
팔랑거리는 이불 아래로 햇살이 들고,
바람이 살랑 불었다.
그 사이를 몇 번이고 오가며 깔깔 웃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깊어갔다.
저녁 무렵이면, 마당 구석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조심스레 불을 붙이고, 긴 막대로 장작을 밀어 넣으면
불꽃이 타올랐고 그 불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연기에 코끝이 그을려도, 그 순간은 그저 즐거웠다.
할머니는 부엌문 너머로 나를 보며 웃으셨다.
“그러다 이불에다 지도 그리겠다.”
나는 웃으며 일어났지만,
그 시간이 마냥 좋아서, 조금만 더 앉아 있고 싶었다.
마당은 그렇게,
매일이 새롭고 매일이 즐거운
내 세상이었다.
비눗방울을 날리고,
물뿌린 마당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니고,
장독대 틈에 숨은 고양이를 찾고,
손바닥 위에 무당벌레를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보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이 떠오른다.
놀이터도, 장난감도 없었지만
하루 종일 놀 거리가 쏟아졌던 그 마당.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준,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