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외갓집 방은 아궁이로 따뜻해졌다.
부엌에서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면,
열기가 벽을 타고 천천히 방바닥까지 퍼졌다.
불을 많이 땐 날이면
방 한켠이 맨살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졌고,
나는 늘 아궁이 불길에 그을린,
따끈한 구석에 방석을 깔고 누워 있었다.
거기가 내 자리였다.
겨울 아침이면 부지런히 일어나
할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장작을 넣고,
불이 활활 타오를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불씨가 살아날 즈음엔 고구마와 감자를 하나씩 넣는다.
너무 가까이 두면 타버리고, 멀면 덜 익는다.
적당한 간격을 가늠하는 일은
내게 꽤나 진지한 일이었다.
괜히 혼자 대단한 요리사라도 된 듯,
불을 지키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할머니, 이거 다 익은 거 같아!”
내가 꺼낸 고구마는 겉이 시커멓게 탔지만,
안은 말랑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후후’ 불어가며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에 겨울 냄새가 가득 퍼졌다.
감자는 소금에 콕 찍어 먹고,
고구마는 꼭 김치랑 같이 먹어야 했다.
그 맛은, 진짜였다.
그건 그 계절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그 해 겨울, 눈보다 더 반가운 손님이 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막 제대한 삼촌이 돌아온 것이다.
온 가족이 반가워했고,
외갓집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해졌다.
밤새 내린 눈이 마당 가득 소복이 쌓여 있었다.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밖으로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은 눈사람들을 만들어 장독대 위에 하나씩 올려놓고,
나뭇가지로 팔을 만들고, 돌멩이로 눈과 입을 붙였다.
그것을 본 할머니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오늘은 친구들이 다 놀러 왔네.”
이모는 부엌에서 귤을 까고,
삼촌은 나와 마당에서 눈싸움을 했다.
눈을 던지고, 미끄러지고, 깔깔 웃다 보면
손끝은 얼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들어오자마자,
아궁이 앞에서 구운 고구마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졌다.
“이거 네가 구운 거야?”
삼촌이 고구마를 집어 들며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삼촌은 한입 베어 문 뒤
맛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오~잘 구웠네.”
나는 혼자 뿌듯해서 웃고 말았다.
그때 이모가 방 안에서 외쳤다.
“빨리 와, 이제 주말의 명화 시작하겠다.”
삼촌은 티비 안테나를 조정하며 자리를 잡았고,
나는 고구마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이불 사이에 끼어들었다.
화면에는 눈 내리는 시골길이 나오고 있었고,
창밖 풍경이랑 꼭 닮아 있었다.
할머니는 막 지은 밥에 뚜껑을 덮어
방바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에 두고
이불을 덮어두셨다.
“식으면 안 되지. 할아버지 오시면 드셔야 하니까.”
퇴근하고 오실 할아버지를 위해
늘 그 자리를 남겨두셨다.
밥은 늘 따뜻했고, 그 따뜻함 안에는
늘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어느새 해는 지고, 마당엔 어둠이 가득했다.
골목은 낮게 내려앉은 가로등 불빛에 잠기고,
하얀 눈 위로 조용한 밤이 스며들었다.
창문엔 김이 서려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렸다가
곧 사라지는 게 아쉬워 또 그리고 또 그렸다.
불 꺼진 마당,
장독대 눈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이불속에서 등을 방바닥에 붙이고 누워 있으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곳에는 언제나 나를 감싸는 온기가 있었다.
그때를 떠올릴 때면,
마음 어딘가가 천천히, 다시 익어간다.
마치 고구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