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멈추지 않던 어느 날, 사랑도, 가족도, 그 모든 것이 두 갈래로 갈라져야만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이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결혼을 약속했던 두 분은,
각자의 가족과 함께 따로 피난길에 올랐다.
할아버지는 형제들과 함께
급히 짐을 꾸려 먼저 남하했고,
할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조금 늦게 길을 나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삼팔선이 굳게 막히며,
북에 남은 가족들과는 그날로 영영 이별이 되고 말았다.
막내딸이었던 할머니는
그날 이후, 다시는 친정집 문턱을 넘지 못했다.
어머니와 오빠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이름조차 마음속에서만 불러야 하는 이들이 되었다.
누구도 그날의 이별이 영원할 줄은 몰랐다.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작은 텔레비전에는 늘 흐릿한 화면이 켜져 있었다.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
낡은 사진을 움켜쥔 사람들,
하나 둘 무대에 올라 마이크 앞에 섰다.
나이, 마지막 본 장소, 그날 입고 있던 옷…
잃어버린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기억은 희미했지만, 그리움만은 또렷했다.
말끝마다 삼킨 울음이 묻어 있었고,
누군가는 멀리 있는 누군가를 찾는 게 아니라
그저, 듣고 싶은 이름을 한 번 불러보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그 화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셨다.
낯익은 얼굴이 보이기라도 한 듯
몸을 앞으로 조금 숙이셨다가,
이내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등을 기대셨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엄마랑 오빠들… 잘 살고 있으려나…”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다 늘 같은 말을 꺼냈다.
“엄마, 한 번만 찾아보자.
사연 보내보면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하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됐어.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다들 전쟁통에 죽었을 거야.”
담담한 말투였지만,
말끝은 자꾸만 작아지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떨렸다.
기다림보다 더 두려운 건,
잃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할머니는 찾지 않기로 하셨던 것 같다.
그저 마음으로,
그곳에서 다들 무사히 잘 지내고 있기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오셨다.
대신 곁에 남은 사람들을 더 깊이 돌보셨다.
함께 피난 내려온 친척들,
가까이 있는 이들 하나하나를 정성껏 챙기셨다.
잃어버린 가족의 빈자리를
더 많은 손길과 마음으로 메워가셨다.
그 덕분에 외갓집은 늘 북적였다.
삼촌들과 이모들, 사촌 형제들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처럼 드나들었고,
명절도 아닌 날에도
어김없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곤 했다.
할머니는 언제든 기쁘게 맞이해 주셨다.
밥상 위에는 늘 누구든 함께 앉을 수 있도록
음식이 넉넉히 차려졌고,
그 따뜻한 풍경 속에서 나도 자랐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정이 오가고 마음이 머무는 그 시간들이
내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따뜻한 유년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는 끝내 ‘찾지 않는 길’을 택하셨지만,
마음만은 늘 가족 곁에 있었던 것 같다.
천국에서는 다시,
엄마와 오빠들을 만나셨을까.
어린 시절의 막내딸로 돌아가
그 품에 안겨 계셨으면.
닿지 못한 기다림도
언젠가, 어디선가는
조용히 서로의 손을 맞잡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