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옷은 노인이 입었을 때 훨씬 멋스럽다. 흔히 맨투맨이라 불리는 스웨트 셔츠가 그렇다.
물론 젊은이가 입은 스웨트 셔츠도 멋지다. 하지만 노인이 입은 스웨트 셔츠는 단순히 멋지기만 한 게 아니다. 거기에는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놓이게 하는 면이 있다. 잠시나마 긴장을 풀게 하고, 삶과 세상을 좀 더 따스히 바라보게끔 하는 효력이 있다. 꼭 “세상은 자네 생각만큼 암울하지 않을지도 몰라. 나이를 먹는 것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고. 그러니 눈치 보지 말고 늘 편하고 느낌이 좋은 옷을 입는 거야. 기왕이면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되는 걸로. 이를테면 이 스웨트 셔츠처럼.” 하고 말을 건네는 것 같다.
한데 그런 식으로 말하는 노인을 적어도 나는 본 적이 없다. 누가 그랬더라는 소문조차 듣지 못했다. 솔직한 얘기로 잔소리나 된통 얻어먹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게 경험에서 나온 내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듣지 못했다고 해서 그런 노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며, 설령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문제 될 건 없다. 그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 아래 감춰진 보편성을 한데 그러모으면 분명 저 말과 비슷한 모습일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순 있어도 전체를 마냥 미워할 순 없다.
어제 본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내가 봐온 중 단연 최고였다. 이쯤 되면 스웨트 셔츠계의 스페셜리스트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싶다. 만약 스웨트 셔츠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 같은 게 있다면 그대로 커버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만큼 정말 완벽하다. 당연히 그런 잡지는 없을 가능성이 높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