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 찾는 서점은 특이하게도 원형에 복층 구조로 되어 있다. 1층은 공간 구분 없이 뻥 뚫려 있고, 벽면을 따라 발코니처럼 튀어나온 2층이 1층을 감싸며 내려다보는 형태다. 원형 도서관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며칠 전 읽을거리나 좀 쟁여둘까 하고 서점을 찾았다. 맑은 주말의 초저녁이었다. 1층으로 막 들어섰을 때,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보이는 왠 까무잡잡한 여자아이가 내쪽으로 달려왔다. 당연히 내게 용무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함께 온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며 찾고 있다. 행동거지와 목소리 강도로 볼 때 상당히 흥분한 것 같다. 팔과 다리가 안쓰러울 정도로 가늘고 길다.
“야야, 여기 정경호 있어, 정경호. 저기 2층에 앉아서 책 보고 있어.”
나는 연예계 사정에 원체 어두워 연예인 이름 같은 건 잘 모른다. 실제로 봐도 대개는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이름을 불러대면 분명 정경호라는 사람에게도 잘 들릴 것이다. 이곳은 원형인 데다 사방이 뻥 뚫려있어 어디서든 소리가 잘 들리니까. 그가 누구이던지 간에 나는 정경호 씨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두리번거리는 척하면서 2층을 슬쩍 올려다보니, 과연 여자아이 말대로 어떤 사람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그러나 책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하고 연신 아래쪽을 흘끔흘끔 댄다.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누가 봐도 정경호 씨다.
다만 그의 외모는 생각과 많이 달랐다. 정경호 씨는 여자아이와 마찬가지로 안쓰러우리만치 비쩍 마르고 까무잡잡했다. 코에는 손자국으로 자욱한 안경이 삐딱히 걸쳐져 있다. 한눈에도 여자아이와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마스크 안쪽에서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예상치 못한 감흥이다.
책을 몇 권 뽑아 들고 2층으로 향한다. 정경호 씨는 여전히 같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진정이 좀 되었는지 제대로 집중한 모양새다. 나는 그의 뒤편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다. 정경호 씨도 정경호 씨의 책을 읽는다. 그는 만화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2층에는 만화책 코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