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머그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마음에 쏙 드는 머그를 찾기가 참 어렵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불행히도 현재까지 같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덕분에 원형탈모가 생겼다거나 밤잠을 설치진 않지만,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릴 때마다 나는 그 작고 흐릿한 점 같은 불만족이 내 속에 여전히 남아있음을 확인한다.
그간 ‘어쩌면 이 머그야말로’ 하고 기대를 품게 만든 머그가 몇 있긴 했다. 하지만 것들도 좀 지나고 보니 내 삶을 거쳐간 다른 머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반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데 부분 부분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용량이 적당하면 손잡이가 살짝 불안하고. 손잡이가 안정적이면 두께나 입술, 프린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내게 딱 맞는 꿈의 머그를 찾는 건 정녕 불가능한 일인 걸까.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아무래도 머그 자체보다는 조금씩 변하는 나의 취향과 커피 습관이 유력한 원인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최근 몇 년 간 나의 커피 섭취량은 꾸준히 늘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300ml(10온스) 정도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500ml(17온스) 정도는 마셔줘야 정신이 좀 든다. 이 수치가 앞으로 계속 더 늘어날지 다시 줄어들지는 나도 자신하지 못한다. 취향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뭐든 장식이 있는 쪽보다는 밋밋한 쪽을 선호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라이언이 프린팅 되어 있지 않은 머그는 머그가 아니라고 박박 우겨댈지도 모르는 일이다.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긴 하다만. 어디까지나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머그는 예전에 음악 후반 작업을 맡겼던 회사에서 뭔가를 기념해 만든 머그다. 뭘 기념한 건지는 깨끗하게 잊어버렸고 그 회사에 딱히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난한 흰색에 용량도 손잡이도 적당해 나름 애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프린팅 된 로고가 작고 단순해서 마음에 든다. 이 정도면 비교적 이상에 근접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모자란 부분은 내쪽에서 채워나가면 될 테고. 완벽한 머그는 아무래도 이번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