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원형에 가까운 이야기
작년부터 넷플릭스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전작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보길 미루어 온 작품들을 챙겨 볼 좋은 기회여서 지금까지 드문드문 네 작품을 봤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붉은 돼지> <마녀 배달부 키키> <벼랑 위의 포뇨> 순으로. 모두 좋았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벼랑 위의 포뇨>. 만약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을 고르라면 서슴없이 <마녀 배달부 키키>를 택하겠지만(실제로 이건 이미 몇 번이나 보고 말았다), 얼마만큼 감정을 쥐고 뒤흔들었는가 하는 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역시 <벼랑 위의 포뇨>를 꼽을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과거 <모노노케 히메>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것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벼랑 위의 포뇨>를 보고 난 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크게 두 가지 군으로 바라보게 됐다. 우선은 <모노노케 히메>나 <천공의 성 라퓨타>와 같은 장대하고 탄탄한 서사를 지닌, 음식에 빗대자면 호화로운 ‘만찬 스타일’의 작품군. 다음으로 <이웃집 토토로>나 <마녀 배달부 키키>처럼 서사는 다소 빈약하나 캐릭터와 이미지의 매력에 치중한, 소박한 ‘한 그릇 스타일’의 작품군.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그런 경향을 느꼈다는 것이지 모든 작품을 과일 자르듯 깨끗이 나눌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예컨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작품은 그런 면에서 너무도 절묘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 대다수를 본 이라면 내가 말하는 ‘한 그릇 스타일’이 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여간 그가 만든 대부분의 작품을 본 현재 강하게 드는 생각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영상 작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내지는 실마리)는 의외로 ‘만찬 스타일’보다는 ‘한 그릇 스타일’ 쪽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만찬을 차려내는 솜씨도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나지만, 의외로 정말 짜릿한 손맛은 한 그릇 요리에서 발휘되는 특급 (괴짜) 요리사 같다고 할까.
<벼랑 위의 포뇨>는 그러한 ‘한 그릇 스타일’을 극단으로 몰아 탄생시킨 결과물로 보인다. 어쩌면 이 작품이야말로 그간 현란한 극적 장치에 가려 맨눈으로는 좀처럼 확인할 수 없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매서움이 가장 만연히 드러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상세히 밝힐 순 없으나 극 중 그 손길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포뇨의 질주씬이다. 그 씬의 파괴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어르신께 다소 외람된 표현이 되겠지만 아무래도 마음껏 폭주하신 듯하다. 또한 종류와 강도만 달랐지 그런 파괴력 넘치는 표현은 작품 구석구석 도사리고 있다.
다만 그처럼 각 씬의 힘이 워낙 센 데다 각양각색이다 보니 이음새가 매끄럽지 않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등 곳곳에서 서사적 문제가 속출한다. 관객 평을 둘러봐도 개연성이 떨어져 보기 힘들었다는 의견이 꽤 확고한 층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나야 더없이 즐겁게 본 경우이지만, 그런 반응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왜냐하면 <벼랑 위의 포뇨>는 어디까지나 소스케라는 다섯 살 아이가 감각하는 편향된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자 하는 것만 뚜렷이 과장되어 보이고 나머지는 전부 불분명하게 처리(왜곡)되거나 임의적 상상으로 채워진다. 그러다 보니 중구난방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들고, 때로는 꼭 무슨 망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소 수긍하기 어려운 형태인지는 몰라도 나는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이 작품이 꽉 짜인 서사 구조에서는 있는 그대로 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지금껏 작품을 통해 줄곧 전달한 메시지가 가장 원형에 가깝게 표현된 작품이 어쩌면 바로 이 <벼랑 위의 포뇨> 일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다. ‘각각 다른 세계에 살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만나,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하며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간다. 그로써 둘은 서로—혹은 그들을 둘러싼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가능성을 손에 넣게 된다’는. 그보다 더 촌스럽고 허무맹랑할 수 없지만, 사실 그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수도 없는 메시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