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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희수 May 27. 2022

뉴 에이지의 추억

1999년 초여름을 기억하며

   1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대체로 ‘할 일이 없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지낸 건 아니다. 학생의 시간은 대부분 학업에 할애되어 있기 때문에 나처럼 학업을 포기한 이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니까 ‘할 일이 없었다’는 건 가진 시간에 비해 할 일이 충분치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가기도 했다.


   그 친구는 지금 생각하면 사실 친구라 부르기 뭣한, 말하자면 그냥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머리카락은 항상 올백으로 넘기고, 입만 열었다 하면 잘난 척에 온갖 멸시와 비아냥을 쏟아내는 등, 고작 중학생 주제에 이미 온몸에 악덕 업주에게나 찾아볼 수 있는 거만함과 불온함이 좔좔 흘렀다. 물건도 늘 비싼 것만 고집해 당시로써는 최신 핸드폰이었던 애니콜 폴더를 전교에서 가장 먼저 사용했다. 물론 비싼 물건을 고집하는 것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녀석이 그러고 있으니 명백한 잘못으로 느껴졌다고 할까. 하여간 그런 남다른 분위기를 지닌 녀석이었다. 재차 강조하건대 그런 녀석과 친구로 지낼 정도로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아무튼, 녀석과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오는 일요일 아침에 만나서 놀자고 했더니 녀석은 마치 중대한 비밀이라도 들킨 듯 화들짝 놀랐다. 평소답지 않게 허둥대며 말도 더듬는다.


   “아, 근데 야. 저기, 아, 나 일요일 아침은 안 되는데.”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교회에 가야 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교회!?”


   녀석은 수세에 몰린 듯 당황했다. 하지만 곧 기존의 건방진 표정과 자세를 되찾고는 말했다. 귀찮아 죽겠다는 투다.


   “아씨, 야 나도 당연히 가기 싫지. 근데 안 가면 아버지한테 처맞는다.”


   녀석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구나 싶어 잠시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렇지만 오는 일요일 아침에 할 일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그런 내 속내를 읽었는지 녀석은 “야, 그럼 같이 교회 갔다가 놀자”는 뻔뻔한 제안을 내놓았다. 물론 내키진 않았지만 녀석이 기도문을 외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 할 일 없이 집에 있는 것보다야 그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일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팔자에도 없는 교회에 가게 된 것이다.




   2

   일요일 아침, 교회 근처 골목에서 만난 녀석은 학교에서보다 더욱 악덕 업주 같은 모습이었다. 검은 슬랙스에 화려한 니트 조끼. 한쪽 옆구리에는 두툼한 가죽 파우치까지 끼고 있다. 예배를 하러 가는 신도가 아니라 빚을 독촉하러 가는 고리대금업자 같았다. 교회에 꼭 가야 한다는 원칙은 정해져 있지만, 무엇을 입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정해진 원칙이 없는 모양이었다. 반면 나는 그냥 평범한 면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라 누가 봐도 녀석의 수행원 혹은 채무자 같은 꼴이었다.


   우리는 예배실 구석 자리에 앉아 예배가 시작되길(물론 궁극적으로는 끝나길) 기다렸다. 예배실은 좁고 어두웠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물건들이 곳곳에 쌓여 있어 음산한 느낌도 들었다. 낡고 해진 나무의자와 성경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곧 예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목사님의 인도에 따라 기도문을 외우고 찬송가를 불렀다. 물론 나는 신도가 아니어서 기도문은 물론 찬송가도 부를 줄 몰랐다. 그래도 어떻게든 따라 불러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친구 녀석이 입만 뻥긋거리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로는 나도 입만 뻥긋거렸다.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은 예배 중반부터였다. 가뜩이나 어두웠던 예배실이 완전히 암전 되더니 어디선가 빔 프로젝터가 켜졌다. 그리고 난데없이 목사님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표제에 ‘악마’ ‘사탄’ ‘뉴 에이지’ 등의 단어가 보였다. 나는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야, 이게 갑자기 뭐야? 뉴 에이지? 여기 원래 이런 분위기야?”


   녀석은 말이 없었다. 잠시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어깨를   으슥할 뿐이다. 본인에게는  상황을 해명해야  아무런 의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는 어두워진 틈을  애니콜 폴더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진절머리가 났지만, 내게는 들여다볼 핸드폰도 거니와 이제와 뛰쳐나가는 것도  어색할  다. 결국 ‘그래 무슨 얘기인지 들어나보자 심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고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했다.


   목사님은 대단한 열정으로 프레젠테이션에 임했다. 예배보다 스무 배 정도는 더 열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내용은 중학생인 내가 보기에도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요컨대 이 세상에는 하느님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신도들을 타락시키려는 목적을 지닌 사악한 집단, 소위 ‘뉴 에이지’ 파가 존재하며, 이들은 교활하게도 음악으로 그 목적을 실행하고 있다. 따라서 뉴 에이지 음악을 들으면 심신이 병들고, 특히나 임산부의 경우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스크린에는 두 장의 초음파 사진이 띄워졌다. 한쪽은 정상 태아, 다른 한쪽은 뉴 에이지 음악을 들어 기형이 된 태아라고 하는데, 사진의 출처와 진위는 제쳐두더라도 전문의가 아닌 내 눈에는 똑같이 복잡한 얼룩으로 보일 뿐이었다. 대체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한낱 음악에 그렇게나 교묘하고 치명적인 기능을 담을 수 있다는 점도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어 그날의 메인이벤트가 거행되었다. 목사님이 뉴 에이지 음악을 직접 들려주겠다 하신 것이다. 교육 및 예방 차원이라 강조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꺼림칙했다. ‘아니, 지금까지 신나게 뉴 에이지 음악의 치명성을 설명하셔 놓고 직접 들려주신다니, 여기 있는 모두를 병들어 죽게 하실 셈인가’ 싶었다. 곳곳에서 걱정스러운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목사님은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신 듯 ‘뉴 에이지 음악은 몇십 초 이상 들을 경우에만 그 효력이 발휘되기 때문에 그 이하로 들으면 괜찮다’는,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우리를 안심시키려 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친구 녀석은 어떤가 해서 봤더니 어느새 완연한 수면 상태에 들어가 있다. 자신이 지금 교회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그렇게 한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숨 죽인 가운데 몇십 초 남짓의 뉴 에이지 음악이 예배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련한 피아노 연주곡이었다. 나는 음악에 한껏 귀를 기울이며 혹시 닥칠지도 모를 악마적 습격에 대비했다.




   3

   나는 요즘 주로 CD로 음악을 듣는다. 그래서 예전보다 음반 가게나 중고서점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도 CD나 좀 구경할까 싶어 가까운 중고서점을 찾았다. 그리고 진열장을 둘러보던 중 아주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조지 윈스턴. 중고 시절, 얼터너티브 록과 펑크, 하드코어 등 온갖 시끄러운 음악에 파묻혀 살면서도 끝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름이다. 나는 그 이름과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은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 일은 1999년 초여름, 부산 금정구의 한 작은 교회에서 일어났다. 나는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그 앨범을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 CD를 플레이어에 넣으니 첫 트랙 <Dubuque(더뷰크)>가 흘러나온다. 산들바람이 낮은 초지를 스치듯 맑고 산뜻한 연주다. 앨범 제목은 <Plains>, 즉 ‘평원’인데 이제 보니 이 앨범의 발매년 역시 1999년이다. 1999년이라.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주 혼동했다. 그래서 자신의 두려움을 종종 애꿎은 타인이나 다른 뭔가에 덧씌우곤 했다. 그 두려움에는 하나같이 악마적 혹은 그와 유사한 다른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었다. 자신과 다른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언제나 그 주요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이건 꼭 교회의 문제만도, 1999년의 얘기만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의미한 바는 전혀 다르지만, 돌아보면 그 목사님 말씀이 옳았다. 음악과 뉴 에이지의 효력은 대단했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것과 대면한 첫 순간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간 어느 할 일 없는 중학생을 음악가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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