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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호우 Mar 22. 2016

비보.

한국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하와이로.

아주 친한 동생이 토요일에 결혼을 했다.


키는 전봇대같이 크지만 그에 비해 덜자란 가슴을 안고 사는 착한 녀석이다. 가끔 철이 없긴 해도, 가족과 지인들을 끔찍하게 챙기는, 구수한 사투리의 경상도 사내다. 점점 넓어지는 이마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증권맨인 이 동생이 결혼을 했다. 나는, 네가 아직 철이 덜 들은 것 같다고 조금 이른 것 같다며 걱정반 축하반의 인사를 건넸지만 내가 누굴 걱정하랴.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놈이 말이다.  토요일 오후의 결혼식이 끝나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난다는 녀석에게 아무쪼록 잘 다녀와서 보자고. 정신없을테니 가보라고 손을 휘젓고 집에 왔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월요일, 그 동생과 친한 후배놈한테 문자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ㅇㅇㅇ의 모친상, 수원시연화장'


농담이나 장난이 아닌 걸 단박에 알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짧게 답문을 하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알았다.'


하와이의 한 호텔방에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풀었던 짐을 다시 꾸리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비보는 그렇게 순식간에 날아들었고, 쫓기듯이 낭보는 잊혀졌다.


하루가 지난 화요일, 나는 해가 지고나서야 회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차분하게 차를 빌렸고, 조심스레 운전을 했다. 나는 무표정했다. 알 수 없는 가루가 액체의 바닥으로 천천히 침전하듯이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장례식장 앞에서 우연히 동생을 마주쳤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기에 말없이 안아줬다. 그 녀석은 울지 않았다. 더

울 수 없을 정도로 눈은 부어있었고, 슬픔과 여독의 화학작용으로 눈밑은 검게 그을려있었다. 난 가만히 그 녀석을 부둥켜 안았다. 세 번의 큰 절과 두 번의 반 절이 끝난 뒤에야 동생과 대화를 나눴다.




"잘 하고 와."



"고마워요 형. 정말.."




돈이 없어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고, 소주 몇 잔에도 모든 진심을 털어놓던 지난 대학 시절이 스쳐지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 이 녀석은 '지금'이 제일 슬플 터. 나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동생의 슬픔의 만 분의 일도 이해할 수 없고, 함께 울어줄 수 없는게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취업한다고, 회사생활한다고,  연락없는 것도 당연한 거라며 챙기지 못했던 지난 날이 후회스러웠다. 미안했다.


 그 녀석은 다시 돌아온다. 철은 없고, 머리는 자꾸 벗겨져서, 근심가득한 하소연을 입에 문채로 그 녀석은 돌아올 것이다. 난 그 때를 위해 소주 네 병과 엉터리 생고기 한 근 반을 준비해야한다. 우리가 더는 울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한다.


 전봇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우리 엄니도 아부지도 일도 사랑도 다 잘 챙기면서 여기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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