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방, 냉장고, 그리고 나
하루 종일 거리를 배회하다 밤이 되서야 집에 돌아왔다.
이토록 작은 방이
이렇게 혼란스러울 수 있을까?
혼돈의 방을 보며 잠시 놀랐다가, 이윽고 청소를 시작했다. 몸은 지칠대로 지쳤지만, 즐겁고 의미있던 낮의 일들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방을 치웠다. 그러다 냉장고를 열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얼음은 물이 되어 있었다.
냉장고는 꺼져 있었다.
언제부터 꺼져 있었는지, 왜 건드리지도 않은 냉장고가 꺼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전원 플러그를 뺐다가 다시 끼웠더니 위잉-거리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것들이 생각났다.
대혼란에 빠져 있던 방의 모습과 그 방을 그렇게 어지럽히고 있던 내 모습들, 술에 취해 신발도 벗지 않고 방바닥에 널부러져 잠들었던 어젯밤의 내 모습, 잘한 것도 하나 없으면서 앞으로 잘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며 히죽거리던 내 모습 등등등 거멓고 탁한 나의 단면들이 떠올랐다. 어두운 무채색의 단면들과 낮의 컬러풀한 기억들이 대비되었다. 씁쓸하고 쓸쓸해졌다.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내 삶에 대한 관심이 언제부터 꺼져 있었는지, 왜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꺼져 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서야 살짝 빠져있던 전원 플러그를 발견한 것 같다.
있는 힘껏 꽂아놓으면 다시 작동하겠지.
위잉- 거리면서.
#그게문제가아니라면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