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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호우 Oct 02. 2015

소개 글.

부지런하지 않은 브런치입니다.

류 호우 님의 브런치입니다.

 
브런치에 가입하면 자동으로 소개 글이 설정됩니다. '( 작가명 ) 님의 브런치입니다'는 식인데, 기본 중 기본 문구입니다. 하지만 직관적이고, 단단(?)하죠. 타인에 대해 무관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값으로 설정된 소개 글을 (나의)맞춤값으로 바꾸는 건 매우 사소한 일임과 동시에, 꽤나 신경이 쓰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한 문장으로 '나'라는 사람을 압축시켜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오기 때문이죠. 물론 이 압박감은 제 스스로 부여한겁니다 - 하지만 이런 걸로 그런 작지 않은 압박을 느낄 필요가 있나,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말장난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너무 재미있지도 없지도 않고, 문장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들에 대한 기준은 주관적이며, 상대적이죠. 뭐든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써보자는 생각으로 이렇게 써봤습니다.


부지런하지 않은 브런치 입니다.


단번에 지어낸 문장입니다. 나름대로 제 의도에 적당히 맞아 떨어지는 소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만족감을 느끼려는 순간, 문득 브런치 작가 신청 사유에 적어냈던 말이 기억나더군요.


부지런하게, 꾸준히 써보렵니다.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작가 신청이 완료된지 두어시간 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변심을 하는 듯한 제 모습이, 얼마 전에 관람한 영화 (최동훈 감독의)암살에 나오는 밀정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 적고나니 왠지 브런치 작가 선정 담당자에게 송구스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소개 글 입력화면 캡쳐사진 >


하지만, 제가 틀렸다고 만은 할 수 없을겁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의 소개 글이 잘못이 아닌 이유


1.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다.

- 단지 자기소개 글을 적는 순간에도 글의 소재로 이용하기 위해서 소개 글 입력화면을 캡쳐했습니다. 다른 목적이 있거나, 잘못 누른 게 아닙니다. 이 말에 거짓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제 수명이 5일 쯤 단축되어도 좋습니다. (그래도 진짜 단축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2. 브런치(Brunch)는 원래 부지런하지 않은 것이다.

- 브런치(Brunch)는 아침식사를 뜻하는 Breakfast와 점심식사인 Lunch의 합성어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아점밥'이라고 하는데, 주로 일하지 않는 휴일의 오전 10시에서 11시반 사이에 먹습니다. 브런치(Brunch)는 영어라서 느낌이 덜하지만, 한국의 '아점밥'이라고 하면 게으르고 느긋한 상태에서 먹는, 적시보다 약간 늦거나 이른 가벼운 식사의 뉘앙스가 풍깁니다. 지금 제가 이용하고 있는 이 글쓰기 서비스(?)의 이름이 바로 브런치 입니다. 아점밥이 주는 뉘앙스처럼 느긋하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가볍든 무겁든 삶을 위한 필수조건인 食과 같이 글쓰기를 하면 된다는 것이 네이밍의 의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3. 열과 성을 다해 변명을 하고 있다.

- 위에 1, 2번을 읽으셔서 아시겠지만, 현재 저는 별 것도 아닌 일에 굉장한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변명하고 있습니다. 소개 글의 부지런하지 않은 브런치의 작가로만 치부하기에는 매우 열정적으로 자기변호를 하고 있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끌어다가 합리화를 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부지런하지 않았다면, '부지런하지 않다'고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전 부지런하기 때문에 제가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이 재미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부지런한지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제가 정말 얼마나 부지런한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피력을 해야하는 건데, 그렇게 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면 되겠지만, 귀찮아서 못 하겠습니다. 음.. 귀찮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전 그다지 부지런하지는 않은가봅니다. 이제 보니 전 게으르네요. 그렇습니다.


나는 게으릅니다.


소개 글을 다시 수정 할 필요는 없겠네요. 제가 한 말이 적확하게 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쯤되면 '소개 글은 나를 함축하여 보여준다'는 제 말이 맞다고 생각하실겁니다. 저는 지금 제 소개 글에 저의 모든 것을 억지로 끼워맞춘 것 같은 느낌을 강력하게 받고 있긴 하지만 말이에요.



여러분은 저처럼 변명하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도 매우 만족스러운 소개 글을 작성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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