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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호우 Oct 07. 2015

퇴근길 글쓰기.

예상 밖의 스릴을 즐기세요

저는 주로 퇴근길에 글을 씁니다. 스마트폰을 양손에 쥐고 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오륙년 전부터 입니다. 아이팟 터치로 좋아하는 문장들을 메모 앱에 옮겨 적거나, 교수님께 장문의 메일 쓰면서 단련이 됐습니다. 그래서 오타도 거의 없고 피로감도 크게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점은 만원버스 속에서 타이핑을 해야 한다는 점이죠.


< 달려오는 버스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회사원떼. 버스정류장에도 스크린도어 설치가 필요합니다. >


편하게 갈 수 있는 자리(노약자석이 아니면서, 어르신과 임산부 또는 많은 짐을 든 젊고 메마른 여성이 옆에 서있지 않은 자리)에 앉았다면, 매우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만, 퇴근길 만원버스에서 그런 자리에 앉을 행운이 제게 돌아오는 경우는 매우 적습니다. 서있는 경우에는 긴 봉 옆에 서게 된다면 그나마 낫습니다. 겨드랑이에 봉을 껴고 봉에게 온몸을 위탁한 채 글을 쓰는 것도 꽤 스릴있거든요. 하지만 최고의 스릴 느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붙잡지않고,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는 버스에 서서 글을 쓸 때죠. 그 때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나의 발바닥 감각과 평형감각, 그리고 버스의 움직임을 읽는 날카로운 곁눈질 뿐입니다. 버스의 발진과 제동 타이밍에 맞추어 섬세하게 무게중심을 이동해야합니다. 이 작업(?)을 하는 동시에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활자를 차례대로 입력하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못 할 일도 아니죠.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


의지만 있다면, 못 할 일이 없죠. 매우 상투적인 말이긴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들 말고도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는 많습니다. 그 중에서 자신의 움직임이 타인에게 어떤 물리적 위해를 가할지 예측하지 못하는 이어폰을 착용한 스마트폰 유저들을 특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대체로 스마트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내릴 정류장을 잊고 있다가 급하게 튀어나가곤 합니다. 그들의 급작스런 무브먼트는 다양한 형태의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멀쩡하게 가만히 있는 제 가방을 그들의 이어폰 줄로 포획해놓고는 도끼눈을 뜨고 줄을 푸는가하면,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제 손을 정확히 가격하여 제 폰이 바닥으로 자유낙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책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나, 스마트폰을 통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도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런 경험을 갖고 계실 확률도 무척 높습니다.


이쯤되면 퇴근길 글쓰기가 그렇게 힘든데, 굳이 해야하나? 하는 의문이 드실겁니다. 하지만, 퇴근길에만 느낄 수 있는 정서를 이해하신다면 출퇴근길에 잡았던 운전대를 내려놓고 만원버스를 타실만큼 매료되실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퇴근길 글쓰기의 감성에 대해서 말씀드 ㄹ ㅣ ㄱ ㅔ ㅆ   .


제가 이번 정류장에 내려야해서 그만 줄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삑. 처리되었습니다.



추신 : 아직은 beta서비스인, 브런치 앱은 이따금씩 저장이 안된 상태에서 앱이 종료될 수도 있으니 중간중간 글을 꼭 저장하시기 바랍니다. 전 두 번 정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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