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Comparison,
아시아 배우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씨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50년 연기 인생으로 단숨에 영화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녀를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고 비교하는 외신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겸손하게 던진 한마디
"나는 그냥 윤여정 일뿐, 메릴 스트립과 비교하지 말아 달라."
사람들은 비교하기를 참 좋아한다. 내가 어렸을 적 나의 하나뿐인 어머니는 나를 옆 동네에 사는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엄친아 지훈이와 비교하며 나를 나무라곤 했다. 이따금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점심을 먹을 때면 TV 속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았냐며 이야기를 하다가 이따금 거울 속의 자신들의 풋풋한 모습과 그들을 비교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비교를 당하는 횟수보다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하는 횟수가 더 많아지더라.
대학 진학 시기에는 나보다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과, 군 시절엔 나보다 좋은 자대에 배치받은 전우들과,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는 나보다 잘 나가는 동기 혹은 상사들과 나를 직간접적으로 비교하기 시작했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는 진부한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비교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에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온갖 자기 개발서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충고를 질리도록 들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라는 것이 왜 인간이 가장 버리기 힘든 일종의 문화적 관습이 되었는지가 이 글의 주제가 되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A라고 규정 지었으나 타인이 이를 반박하기 시작하면 금세 우리는 스스로 규정 지은 A라는 특질을 버려 버린다. 반박하는 타인이 점점 많아질수록 자신을 A라고 규정지은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아무리 자신이 A라는 특질을 가진 사람라고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한 인간의 자아는 본인이 이루어 낸 것/본인이 내세운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공식에서 본인이 이루어 낸 것은 사실 타인에 의한 평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타인의 평가가 낮아져 분모의 모수가 줄면 나의 자아의 기반이 되는 자존감 역시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사고하는 동물임과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DNA가 설계되었으며, 항상 누군가와 함께 교제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매번 스스로와 누군가를 비교하며 자아를 찾아가고자 하는 본능을 억누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 누군가와 비교하기를 그만하라는 자기 개발서의 조언과 온갖 종류의 예술이 던지는 메시지는 모두 어불성설이 된다. 안타깝지만 우리 모두는 평생 동안 누군가와 자신을 스스로 비교하거나 비교당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간은 스스로의 자아를 찾는 것만큼이나 타인의 자아를 찾아주는데도 참견하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비교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비교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SNS와 실시간 콘텐츠가 미디어를 통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지금, 사람들은 수없이 자신과 자신이 보는 사람들을 비교할 것이다. 기술이 개발함에 따라 우리가 접하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고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하는 횟수는 우리가 접하는 사람들의 수와 비례할 것이다. 비교는 불가피하다. 비교를 피하는 것은 마치 식욕을 참고 다이어트를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자신보다 빠르게 앞서 나가는 성공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낙담할 것이고, 자신보다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들을 보며 일종의 안도감을 내뱉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것이 인간 본성이니까.
현명하게 비교한다는 것은 비교가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에서 비롯된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만큼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비교하기 시작한 것에서 벗어나 제3의 인물들과, 제3의 특징들을 가지고 비교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회사에 나보다 잘 나가는 동료 C가 나보다 업무능력이 좋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보다 업무 능력뿐만 아니라 외모도 훤칠하고, 그 옆 부서의 동료 D는 영어를 잘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번지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다.
이보다는 회사에 잘 나가는 동료 C가 나보다 업무능력이 좋다는 생각 한 가지에만 집중해보자. 내가 스스로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동료 C는 나보다 잘 나가는 재수 없는 놈에서 업무에 관하여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좋은 관찰대상이 될 수 있다.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면 가장 먼저 자신이 부족함을 느끼게 되며 부정적인 감정이 엄습하기 마련이지만 한번 비교 시에 한 가지의 특징만 가지고 비교를 한다면 그 감정이 더 큰 부정적인 감정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음과 동시에 오히려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여정의 말은 충분히 겸손하고 멋진 말이었으나 과연 윤여정 스스로도 언젠가 잠들기 전 메릴 스트립과 본인을 비교하지 않았을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비교를 피할 수 없다면 이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비교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으며 아직 스스로가 준비가 된 상태가 아니라면 무작정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힐 필요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 충분히 단단해지고 비교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비교조차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