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마다 열리는 에스토니아 최대 규모 음악 축제
2003년 11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된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성대하게 열리는 전통음악축제인 Laulupidu(라울루피두). 말 그대로 음악축제(Laulu: 음악, pidu:축제)라는 뜻이다. 1869년 Johann Voldemar Jannsen에 의해 타르투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이 축제는, 1843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되었고 독일을 타고 올라와 발트 3국으로 퍼지게 되면서 자리 잡았다.
1869년 열린 첫 번째 축제는 에스토니아 내 독립운동의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고, 자주독립국으로써 정체성을 깨우치기 위한 운동인 National Awakening의 규모를 확장하는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1879~1910년에는 6번의 축제가 열렸고 이 6번의 축제는 문화와 경제에 대한 각성과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 첫 독립 기간인 1923~1938년 사이에 5년에 한 번씩 개최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잠시 멈췄다가 1947년부터 재개되었다. 1950년부터 지금까지 5년에 한 번씩 꾸준히 열리고 있다.
1934년. 음악, 합창이 중심이 되던 이 축제는 후에 댄스 축제도 개최하게 되었고, 이 역시 전통음악축제와 함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와 청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포크 댄서들의 수가 많이 늘어나게 되어 정부에서는 Youth 페스티벌을 따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첫 Youth 페스티벌은 1962년 개최되어 지금도 꾸준히 전통과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1988년. 발트 3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에도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면서, 1991년 러시아로부터의 두 번째 독립을 이끌어낸 중요한 역사적 요소로도 자리 잡았다.
축제는 탈린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1960년대에 완성된 Song Festival Ground에서 매년 7월에 열린다. 카드리오르그(Kadriorg) 공원 외곽에 위치해 있으며 시내에서 버스로 이동할 경우 보통 10분 안팎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멀지 않다. 참고로 이 공연장 디자인은 에스토니아 내 거의 모든 공연장 건축의 시초가 되었고, 타 도시에 있는 콘서트홀은 똑같은 디자인에 규모만 작게 건설되었다.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 많은 행사가 열린다. 가장 먼저 어마어마한 규모의 행진이 진행되는데, 이 행진은 올드타운에서 해안산책로 바로 옆에 있는 차도를 따라 공연장까지 쭉 진행된다. 행진 때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퍼레이드의 주인공들은 축제 기간 동안 음악을 연주하고 합창을 하게 되는 실제 단원들이다. 주로 에스토니아인들이며 이 축제에 초대되거나 직접 참가신청을 하고 참가하게 된 외국 합창 단원들도 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에스토니아인들이 퍼레이드 라인을 쭉 따라 나와서 참가자들을 환영해주며 박수를 쳐준다.
에스토니아 내 전역에서 올라온 이 참가자들은 모두 자기 지방, 도시, 마을의 전통의상을 입고 행진에 참가한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4년 관람객이 아닌 순수 참가인원 수만 해도 33,025명.(에스토니아 전체 인구는 약 1백30만 명이다.) 퍼레이드는 오전부터 시작해서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진행되고, 퍼레이드 옆 잔디밭에서는 바비큐나 맥주, 아이스크림, 솜사탕 등 소소한 음식 부스들이 만들어진다.
퍼레이드가 끝나면 사람들이 점점 공연장 안으로 들어오는데 한국과는 다르게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한 싸움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앉으면 앉는 대로, 잘 안 보이면 잘 안 보이는 대로. 이 사람들에겐 축제는 다 같이 즐기기 위함이지 누가 더 좋은 자리에 앉아서 더 잘 관람을 하냐의 개념은 아닌 듯 보였다.
올림픽처럼 성화가 채화되면 본 식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대통령을 포함한 소수의 축사가 시작된다. 축제는 에스토니아어로만 진행된다.
밑은 2014년에 열린 축제 중 에스토니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곡이다.
Mu isamaa on minu arm (my fatherland is my love / 고향은 사랑이다)
이 곡은 많은 에스토니아인들이 본인들의 국가(national anthem)보다 '에스토니아의 정체성'을 더 잘 나타내 주는 곡이라고 추천해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neQRawdLv4
Mu isamaa, mu õnn ja rõõm (My fatherland, my happiness and joy / 에스토니아 국가)
https://www.youtube.com/watch?v=NkMiNsLq4nE
가장 최근에 열린 Youth Festival에서 축제 시작을 알리는 성화봉송을 포함한 영상(보면 알겠지만 7월의 에스토니아는 반팔을 입기에 조금 힘든 날씨다)
https://www.youtube.com/watch?v=eFuuqiR3Ggk
Hirvo Surva(1963.07.02 ~ ):
2014년 아티스트 총괄 디렉터 (밑의 영상 Mu isamaa on minu arm의 지휘자) 이다비루(Ida-Viru)주의 코흐틀라-아르베(Kohtla-Jarve) 출신 지휘자로 Estonian Choral Association의 회장이자 이사진. 1993년부터 굵직굵직한 행사의 합창단 감독을 맡고 있다.
Aarne Saluveer(1959. 7. 28 ~ ):
메인 디렉터 중 한 명. 타르투 출신의 합창단 지휘자, 음악 선생님. 에스토니아 지휘자들 중 가장 많은 활동을 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 빌얀디에서 학교를 졸업했고 독일 잘츠부르크 등 유럽 내 많은 곳에서 음악 코스를 밟았다. 에스토니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돌며 합창단을 지휘하고 많은 상을 받았다. Estonian Music Council의 이사 중 한 명.
*Johann Voldemar Jannsen(1819. 5. 4. ~ 1890. 7. 13.)
러시아 제국, 리보니안 시대에 태어난 기자이자 시인. "Mu isamaa, mu õnn ja rõõm" 작사. 1920년에 국가로 지정되었다. 구소련이 에스토니아를 지배할 적엔 금지가 되었지만 핀란드 라디오를 통해서 계속 연주되었다.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한 명이자 "Mu isamaa on minu arm"의 작사가인 Lydia Koidula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묘지는 타르투에 있다.
*Estonian national awakening(에스토니아 민족 각성운동)
자주독립국으로써 정체성을 일깨우기 위해 1850년대에 시작된 운동. 1918년 첫 번째 독립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이후 두 번째 독립을 위해 1987 ~ 1988년에도 진행되었다. 중요 인물로는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에스토니아 건국신화인 Kalevipoeg를 글로 확립한 에스토니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Friedrich Reinhold Kreutzwald(1803. 12. 14. ~ 1882. 8. 13.)와 작가, 정치가, 선생으로서 당시 독립을 위한 극우파를 이끌던 Carl Robert Jakobson(1841. 7. 26. ~ 1882. 3. 19.)가 있다.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
1987년부터 1991년 사이 발트 3국에서 일어나던 독립운동. 당시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인해 발트 3국은 구소련에게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에 벗어나기 위해 손에 손잡고 노래를 부르며 독립을 기원한 무혈 운동을 시작하고 후에 실제 독립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출처:
1. 라울루피두 공식 홈페이지: http://2017.laulupidu.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