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리오르그 궁전, 공원, 쿠무 아트뮤지엄
'캐서린의 별장(Catherine's Valley)'이라는 의미의 카드리오르그(Kadriorg)는 올드타운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지역(한국개념으로는 구나 동)으로 카드리오르그 공원, 궁전, 쿠무 박물관이 있다. 에스토니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한 곳이기도 하다.
1718년 카드리오르그 궁전 공사와 함께 조성된 카드리오르그 공원은 카드리오르그의 거의 전체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궁전과 경기장, 쿠무 아트뮤지움이 위치해 있다. 전체 크기는 약 70 헥터로 올드타운과 비슷하다. 해안가 근처, 숲으로 조성된 공원이라 평소 한적한 편이다. 생각보다 굉장히 크고 이쪽에 미술/예술 관련 볼거리가 몰려 있으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공원 내부에 레스토랑, 카페, 놀이터, 백조 호수 등이 있어 여름에 많이 붐빈다. 특히 이 근방에서 축제가 많이 열리는데 그 중 매년 9월 중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전구/빛 축제(Light Festival)가 가장 유명하다. 약 천여개가 넘는 전구와 양초가 축제기간 내내 공원을 뒤덮는다. 이 기간에는 크고 작은 공연과 근처 박물관, 미술관에서 특별 전시회 등이 열리니 날짜가 맞으면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밤에 가는게 예쁘다/9월이면 해가 아직 길기 때문에 시내에서 저녁 먹고 출발해도 충분하다) 시내에서 트램이나 버스, 택시 등을 이용한 접근성이 높은 시내 외곽 관광지로 충분히 걸어서도 갈 수 있다.
탈린 여행 계획에 카드리오르그 방문이 포함된다면 공원 공식 홈페이지에서 축제 일정을 확인해 보자.
카드리오르그 공원 공식 홈페이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만들어낸 왕, 표트르 대제 (1세). 표트르 1세는 대북방전쟁(1700~1721)에서 승리하고 있었고 1710년 탈린을 장악했다. 그리고 황후(차후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첫 여제가 되는) 예카테리나 1세를 위해 탈린 라스나마에(Lasnamäe) 지역 내 독일 양식의 작은 영주건물을 구입했다.
1718년, 자신의 신임을 얻어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축가로 근무한 이탈리아 건축가 *니콜라 미체티(Nicola Michetti)에게 재건축을 의뢰했다. 니콜라 미체티는 가에타노 치아베리(Gaetano Chiaveri), 미카일 젬초프(Mikhail Zemtsov)와 함께 공사를 진행했다.
바로크 양식으로 1725년 다시 태어난 영주 건물은 카드리오르그 로스(Kadriorg loss), 캐서린의 성(Catherine's Castle)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하지만 정작 선물받은 당사자인 예카테리나 1세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예카테리나/Екатери́на는 캐서린/C(K)atherine의 러시아식 이름이다. 카드리/Kadri는 캐서린의 에스토니아식 이름이다.)
참고로 바로크, 로코코 양식 건축물은 보통 러시아 제국 시대에 만들어졌다. 에스토니아 국토 전체를 통틀어 이 두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약 2000여개 뿐이다. 부자들이 선호하던 건축 양식이었기 때문에 시내 보다는 시내 외곽에 위치한 영주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선물받은 당사자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자주 방문하지도 않았기에 표트르 1세가 사망하자 이 궁전은 모두에게 뒷전인 상태로 남아있었다. 예카테리나 1세와 딸인 엘리자베타가 가끔 방문할 뿐이었다. 그렇게 1741년, 이 궁전에 대한 소유권이 북에스토니아 정부(Governorate of Estonia/Reval Governorate)로 넘어갔다. 1917년까진 이들의 소유였다가 에스토니아 첫번째 독립과 함께 1919년 국유재산이 되었다.
1921년부터 1928년까지 아트뮤지움으로 사용되다가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5세(Gustaf V)의 여름별장이 되었다.
1934년 에스토니아 초대 대통령 *콘스탄틴 팻츠(Konstantin Päts)가 실제 거처하고 업무를 보던 대통령궁으로 바뀌었다. 1940년 콘스탄틴 팻츠가 구소련군에 잡혀 강제 유배 되기 전까지 여러번의 재건축 공사가 이루어졌다.
1944년 구소련 지배 시절 에스토니아 아트뮤지엄으로 다시 개관했지만 1991년 구소련군에 의해 완전히 전소되면서 약 10년간의 재건축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한 때 이곳을 여름별장으로 사용하던 스웨덴 왕족에게 대공사 관련 금전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탈린에 있는 5개 아트뮤지엄의 본관역할을 수행하는 '쿠무(Kumu)'는 아트뮤지엄의 축약인 '아뮤'라는 뜻이다(Kunstimuuseum).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며 북유럽권에서도 상위에 속한다.
1919년 11월 17일 에스토니아 아트뮤지엄 협회가 설립되었지만 1921년까지는 제대로 전시할 수 있는 건물이 없었다. 게다가 1921년부터 29년까지 미술관으로 사용되던 카드리오르그 궁전이 대통령 궁으로 바뀌며 공사가 시작되자 이곳 저곳으로 전시회를 옮겨 다니게 되었다.
1946년, 카드리오르그 궁전이 다시 미술관이 되었다. 하지만 1991년 구소련이 궁전을 공격해 전소시키고 말았다. 이에 따라 에스토니아 최고 위원회는 어차피 궁전을 다시 짓는겸 해서 미술관을 아예 따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공사가 완공되기 전인 1993년 4월 1일부터 2005년 10월. 탈린 올드타운 톰페아 언덕에 있는 에스토니아 기사단 건물(Estonian Knighthood House/Eestimaa rüütelkonna hoone)에서 전시를 이어갔다. 그러다 2000년 여름, 카드리오르그 궁전 재공사가 완료되어 단기 특별전이 기사단 건물에서 옮겨가게 되었고 현재 이곳은 외국 작품들만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보통 에스토니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18세기와, 구소련의 지배를 받던 1940년부터 1991년까지 만들어진 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쿠무 아트뮤지엄을 디자인한 건축업자는 Pekka Vapaavuori. 핀란드인으로 공사는 2003년 시작해 2006년에 완료되었다. 총 5층으로 되어있으며(한국 1층은 유럽에선 Ground Floor이다. 한국 2층이 유럽 1층이다) 주차장과 카페, 강당은 Ground Floor에 있다. 1층은 테라스, 서점, 도서관, 화장실, 인포메이션 센터 등을 포함해서 단기전시실이 있다. 2층은 18세기부터 세계 제 2차대전 기간 동안 만들어진 작품이, 3층은 1945년부터 91년까지의 작품이, 마지막 4층은 1991년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의 단기 전시실이 있다.
2008년 올해의 유럽 박물관 상(European Museum of the Year Award from the European Museum Forum)을 수상했다.
쿠무 아트뮤지엄 공식 홈페이지
탈린 2편에 첨부된 사진은 모두 관련 기관/단체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진칩을 잃어버려 사진이 없습니다.
메인사진: ⓒA.Palu 출처:위키피디아
▶에스토니아 아트뮤지엄 본관 및 분관
본관: 쿠무 아트뮤지엄(Kumu Art Museum/Kumu Kunstimuuseum)
분관
카드리오르그 아트뮤지엄(Kadriorg Art Museum/kadrioru Ioss) / 탈린
미켈 박물관(Mikkel Museum) / 탈린
니굴리스테 박물관(성 니콜라스 박물관/St. Nicholas' Church/Niguliste Museum) / 탈린
아담손-에릭 박물관(Adamson-Eric Museum) / 탈린
▶요하네스 미켈(Johannes Mikkel): 1907년 출생 2006 사망
에스토니아 남부 출신으로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전공을 공부 한 예술품 수집가. 타르투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으며, 1994년 본인의 수집품을 에스토니아 아트뮤지엄에 기부했다. 독일 황금시대의 서양 그래픽 아트(16세기~19세기)와 유럽 세라믹, 중국 도자기 등이 주요 수집품 목록이다. 요하네스 미켈의 기부로 만들어진 카드리오르그 궁전 내부에 위치한 미켈 박물관은 에스토니아에서 유일하게 유럽권 세라믹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아담손 에릭(Adamson-Eric/Erich Carl Hugo Adamson): 1902년 8월 18일 출생 ~ 1968년 12월 2일 사망
응용미술, 공예로 유명한 타르투 출신 예술가.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예술 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뒤 파리로 옮겨 프랑스 출신 화가들과 함께 공부했다.
▶니콜라 미체티(Nicola Michetti): 1675년 12월 7일 베니스 출생 ~ 1758년 11월 12일 로마 사망
베니스 출신으로 주로 로마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한 바로크 후기 건축가. 십이사도교회(The Church of the Twelve Holy Apostles) 재건축, 산타마리아 프랜스포티나 성당(Santa Maria in Traspontina)등 로마 시내에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로마 트레비 분수 디자인 대회에서 안타깝게 탈락하기도 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트페테르부르크 내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페테르고프 궁전(The Peterhof Palace, 여름궁전)과 정원디자인을 진행했다. 러시아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대부분은 현재 에르미타주 박물관(Hermitage Museum)에서 보관 중이다.
▶콘스탄틴 팻츠(Konstantin Päts): 1874년 2월 23일 타흐쿠란나(Tahkuranna/패르누 남부) 출생 ~ 1956년 1월 18일 사망
패르누 남부 헤데메스테(Häädemeeste) 교구 타흐쿠란나 출신으로 에스토니아 초대 대통령이자 극우성향 정치인, 저널리스트. 전간기(interwar: 1919년부터 1939년, 제 1차 세계 대전 종결 후 ~ 제 2차 세계 대전 발발 전의 기간) 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정치인으로 1905년 사형선고를 받았고 스위스와 핀란드로 도망쳐 살아남았다. 1910년부터 11년까지 감옥생활을 했으며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1938년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2년 뒤 1940년 구소련의 지배가 시작되고, 결국 붙잡혀 러시아 우파(Ufa), 모스크바,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러시아 트베르 오블라스트(Tver Oblast) 부라쉐보(Burashevo) 정신병원에서 1956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