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곳

걸었다. 하지만 걸어갈수록, 그곳은 내 결정을 배반하듯 멀어져 갔다.

by 류인환

복도에 서 있어. 복도 끝에는 유리창이 박힌 벽이 있어. 유리창 바깥엔 거대한 빌딩이 보여. 낮은 건물들 사이로 그 조각물은 돋보였어. 그곳에서 살고 싶었어. 빌딩은 아주 가까워 보여. 몇 걸음이면 닫을 수 있을 것 같았지.


한 걸음을 내딛을 때. 조용한 복도에선 저벅거리는 울림이 일었고, 그 진동만큼 다리에는 조그만 충격이 일었어. 물론 걷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아. 하지만 분명 무릎은 발과 지면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었고 그 느낌은 건물에 닿기 위해 소모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었어. 그래서 결정이 필요했어. 소모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소모하기로 했어. 걸었지. 하지만 걸어갈수록, 그곳은 내 결정을 배반하듯 멀어져 갔어. 건물의 크기는 그대로야. 하지만 시야에 더 넓어진 유리창엔 미처 보지 못한 나와 그것 사이의 수많은 건물과 사거리 그리고 횡단보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몇 걸음을 걸었을 때 이미 수 십 번의 계절이 지나고 몇 해가 흘렀어. 결정을 돌이키기엔 많은 걸음을 걸었어. 건물은 여전히 멋져 보여. 더욱 소모했어. 그 걸음 사이엔 밤을 새우는 여정이 있기도 했고, 나태하게 눌어붙은 날도 있었어.


마침내 유리창에 코 끝이 닿았을 때. 알게 되었어. 그곳에 닿기 위해선 복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걸. 다시 1층으로 내려가야 했지. 그리고 횡단보도, 사거리, 건물들을 지나 지금보다 더 긴 길을 걸어가야 해. 그 사이에 백 번의 계절이 바뀔지 몰라. 걸음 정도의 소모로는 어림없었지. 입구를 나섰을 때. 트인 공간에 그 건물은 수백 걸음으로도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더 큰 외형으로 세워져 있었어. 다시 걸었어. 그리고 또 한 번의 계절이 바뀌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