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함. 흐림. 시듦.

그렇게 늙은 잎은 깊은 아스팔트 위 금박이 되었다.

by 류인환

늦가을. 안과 밖의 온도는 마침 같았어. 옷을 걸치지 않아도 두터운 이불 하나면 문제가 없지. 체온으로 데워진 이불은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따뜻해.


바깥. 하늘은 트레싱지를 걸어 놓은 듯 날 선 햇살을 먹먹하게 다져놓았어. 그래서 눈살을 찡그리지 않고도 하늘을 볼 수 있어. 시야를 메운 회색의 면은 말이 없어. 대신 회색 사이 수많은 명도의 차이는 저마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어.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말야. 가을 하늘. 색이 만연한 곳에선 알 수 없던 잔잔한 마음들이 구름 입자마다 들어찼어.


지금. 비가 내려. 왁스를 바른 가구처럼 빗물은 거리 전체를 고풍스럽게 치장했어. 어두워진 아스팔트. 검붉어진 낙엽. 그렇게 깊어진 모든 것들은 한 톤의 채도를 잃었어. 아스팔트에 흩뿌려진 낙엽들은 주름지고 짓이겨지고 버려졌지.


다만 긁힌 자국은 은행 잎사귀에 세월 같은 문신을 새겨 넣었어.


시들어버린 잎 끝자락은 깊은 갈색으로 염색되었어. 흑요석처럼 번쩍이는 아스팔트 위. 늙은 잎은 세밀한 금박이 되었어. 조금씩 주름지는 얼굴. 그만큼 깊어지고 아름다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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