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공기의 육중함은 지난 젖은 시간들의 평평한 판이 겹친 밀도다
비가 내릴 때면. 그 면적과 층이 얼마나 넓고 깊든 비는 연결해. 시간을. 비가 오면 시간의 장은 힘 없이 젖어서 피막처럼 쌓여. 사실 비 오는 날 공기 특유의 육중함은 지난 젖은 시간들이 쌓인 판의 밀도야. 밀도에 갇힌 지난날의 감정들. 그 날의 강수량이 어떻든, 그날의 결과가 어떻든 우린 그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해.
비 오던 날이기 때문에. 축축이 젖은 감정과 사건들을 오래전 길바닥에 던저버렸다고 해도. 그래서 부패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고 해도. 결국 그것들은 재가 되어 공중으로 흩날리다가, 오직 비 오는 날에만 증기에 맺혀 밤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 얼굴에 부딪히곤 해. 그러면 우리는 고개를 들어 이젠 알아볼 수 없는 감정들을 게슴츠레 쳐다볼 수밖에.
하늘처럼 흐릿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우산의 빈틈 사이 뺨에 스며든 두터운 시간의 층을 덮어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