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무료한 시간

늦은 밤. 회사를 나와 미용실로 향했다.

by 류인환

늦은 밤. 회사를 나왔어. 새벽까지 문을 연다는 미용실로 급하게 택시를 잡았지.


운전선에는 아주머니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어. 기사 복장이 코스프레처럼 어색한 단발의 그녀는 스피커폰으로 딸에게 말하는 중이야. "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 아냐." 남의 집 안방에 들어온 듯 자초지종을 엿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딸을 두둔했어. '그럴 수도 있지.'


차창 밖 검은 풍경 사이로 자동차 불빛들이 숨을 불어내듯 스며들었다 사라져. 그에 걸맞은 라디오 "잘 자요" 목소리. 노래가 흘러나와. 고개 기울이고 미소 지으며 애청하던 그녀는 입을 열기 시작했어.


"원 섬머 나잇-".


눈을 지그시 감고 부르는 나긋한 목소리에, 혹시 아주머니가 뒷좌석의 날 잊은 게 아닐까 걱정되었어.


그때.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며 차들이 엉켰어. 덩치 큰 버스들이 빵빵-거림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욕이 터져 나오는 순간. 나는 긴장했어. 소녀의 입에서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주머니는 웃음을 하- 터트리며 한마디 했어. "여기가 좀 막혀요." 그녀는 이곳 차로의 누구보다 믿음직해 보였어.




미용실에 도착하니 11시쯤 되었어. 지긋한 원장님은 하품하며 내게 기다려달라 말했어.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지. 바글바글한 사람들은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았어. 옆엔 나와 같은 입장들인지. 사내들 넷이 멀뚱멀뚱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넷 중 하나가 되어 내일 출근 걱정을 했어. 12시를 넘겼을 땐 마음을 내려놓았어. 어떻게 되겠지. 분홍색의 팬시한 인테리어. 낡은 가구. 졸린 사내들. 어울리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이곳은 나름대로 포근해.


한쪽 벽에 원장이 20여 년 전 동창들과 미용대회 시상식에서 찍은 사진이 크게 걸려있어. 20대의 모습으로. 원장님은 늦은 밤에 동창들과 더 늦은 술 약속이 있나 봐. 한분은 수원에서 막차를 타고 올라온대. 구석에 통통한 아주머니 입이 퉁퉁 불어있어. 빨리 문 닫고 가자고. 그 아주머니도 저 사진 속 한분일까.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어.


재촉하는 그 아주머니를 무시한 채, 말없이 머리카락을 다듬던 원장님은 끝으로 내 머리를 감겨줬어. 하루의 마감시간. 땀에 절은 내 경직된 머리카락을 누군가가 곧 잠들기 직전에 두 손으로 감겨준다는 것. 수고했다 토닥이는 것 같았지. 그렇게 가을밤 새벽에 기대하지 않은 위로를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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