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 오브 웨일스 8 풍뎅이의 삶

포자가 내게 없던 감각기관을 주었고, 새로운 세계와 시간을 느끼게 했어.

by 류인환

길을 걸으며 정령은 자신의 생애를 말해주었어.

“나는 풍뎅이라네. 예전엔 그랬었지.”

“풍뎅이. 그 시절엔 시야가 좁았어. 반대로 말하면 이 숲 바닥은 내게 무한했다네. 냄새를 따라 끝없이 움직이는 존재였던 내게, 이 세계는 성운이었어. 페로몬으로 가득한 입자의 세계. 이 우주를 나의 여섯 다리와 날개로 쉼 없이 다녔지. 휴식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지. 사고방식은 지금보다 단순했어. 펼쳐진 성운 중 어떤 부분이 붉은 안개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먹이라 느껴지면 날아가 대상을 낚아채면 되니까. 노란 안개가 포식자라면, 더는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도망가면 되었네. 청록 안개가 내 짝이라면, 먹은 것들을 뱉어내고 힘껏 날개를 파닥거려 날아가면 되었네. 나의 의식은 안개의 색깔에 작동하는 반응 기제 같은 것이었지. 그런데, 언젠가 요망한 버섯을 먹게 되었어. 자네가 먹은 것 말이야! 내 짝들과 같은 청록 빛을 발하는 버섯 말일세. 그것이 어느새 내 몸에 자라나 살과 즙을 파먹었단 말이지. 성운을 쫓았던 풍뎅이의 삶을 삼켰단 말일세!”


“그것 참 안됐네.” 왕자는 코웃음 치듯 말했어.


정령은 그를 멀뚱히 바라보다 대답했어.

“그것이 내가 지금 존재하는 이유일세.”


벌레는 하늘을 바라보며 더듬이를 번들거려.

마치 공기를 간 보는 듯. 그리고 네 개의 팔을 펼쳤지.


“버섯은 내 의식을 지배했지. 이 포자 가루가 내게 없었던 감각기관을 주었고, 새로운 세계와 시간을 느끼게 했어. 암흑의 세계. 느릿한 전이. 하지만 생동감 있는 거대한 잠식 말일세! 마치 죽음처럼! 포자들은 숲 바닥을 지배한단다. 잠식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동안 나는 수백 아니, 수만 년을 지냈다. 너 같은 애송이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야. 그 긴 세월 동안 죽음과 부활을 겪었네. 곤충에게 먹히는 버섯. 곤충을 먹는 버섯. 그렇게 연장되는 의식으로서 말이야.”




곤충을 별안간 팔을 왕자의 목에 갖다 대었어! 갈고리들이 왕자의 살을 베어! 곤충은 힘을 더욱 주었고, 왕자의 목은 피로 물들기 시작해. “이거 놓으세요! 놓으라고!” 왕자는 발버둥 쳤어. 벌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어.


“그렇게 의식으로 존재하다 보니 어느새 이곳 정령이 되어버렸네. 자네를 안전하게 꾀어내기엔 내 인내심에 한계가 왔네. 수만 년의 인내 말이야. 자네는 이제 곧 죽을 것이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지. 본인의 살을 파먹었던 구더기로 시작할 것이네. 실망하지는 말게. 죽음과 부활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 멋진 풍뎅이 한 마리 정도는 될지 모르지. 나처럼 말일세. 그래, 내가 되게! 나는 지긋지긋한 이곳을 자네가 되어 벗어나겠네. 상류 포식자가 될 것이라네!”


왕자는 자신의 목을 움켜쥔, 날카로운 곤충의 다리를 잡았어. 팔 근육에 압력을 넣을수록 곤충 다리에 돋은 가시는 그의 목 안으로 깊게 파고들어


“힘 빼지 말게. 이러다 목에 구멍이 나겠어.” 정령은 쇳소리 같은 낄낄거리는 소리를 내어 웃어. 그리고 다른 다리로 그의 손목을 잡아챘지.


“우리 곤충들은 다리가 여섯이지. 두 개는 너의 하체. 두 개는 상체.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목을 움켜쥘 수가 있네. 너를 제물로 삼아 내가 짐승이 된다면, 없어질 다리 두 개가 허전하겠어. 가렵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말이야. 가려움 말이야. 거대한, 그리고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종은 가렵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늘 궁금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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