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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에 쓰러진 왕자의 머리맡부터 다섯 걸음쯤 뒤.
벌레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어.
벌레는 왕자의 머리통 만했지. 거대한 벌레는 미백색 왕관을 쓰고, 두터운 백색 도포를 걸쳤어. 왕자는 눈을 비볐어. 벌레의 왕관은 버섯이야. 머리 갑각을 뚫고 나온 버섯 돌기는 무척이나 길어. 가운은 거미줄 같은 포자로 이루어졌어. 벌레, 아니 버섯과 벌레가 뒤섞인 그 생물은 인간처럼 두발로 걸어오고 있어. 그리고 왕자의 귀에 주둥이를 대고 속삭여.
“내가 보이는가.”
왕자는 힘겹게 고개를 끄떡였어.
“나는 숲 바닥의 정령이라네.”
벌레는 포자가 묻은 눈을 두 손으로 부단히 닦아내며 말했어.
왕자는 신음하듯 대답했어.
“본인이 보기엔 벌레일 뿐인데.”
정령은 껄껄 웃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어. 반동에 버섯 뿔은 포자 가루를 공중에 흩뿌렸지. 흘러내린 입자가 왕자의 뺨에 닿았어. 그가 며칠 전 먹었던 청록 버섯과 같은 냄새야.
“난 영혼이란다. 굳이 출신을 따지면 벌레보단 버섯에 가깝지. 숲 바닥 생명의 표상이라고 할까. 숲 바닥. 이곳은 썩음 그 자체이지. 자네는 역겹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곳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어. 부활을 담당하는 곳이니까. 우리 아이들은 자네의 육체가 어서 숨 멎고 썩길 고대하고 있지만, 내가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었네. 아깝거든. 아직 죽기에는 자네 육체가 아깝네. 언젠가 죽더라도 조금 더 뒤에 죽는 것이 낫지 않은가.”
왕자의 위장에선 흙과 벌레가 뒤섞여 맷돌처럼 장기를 짓이기는 고통이 일어. 뱃속에 살아남은 벌레가 살기 위해 왕자의 내장을 긁어내는 듯 해.
“자네에게 부활을 가르쳐주겠네. 내 기쁨이지."
어느 틈에 정령은 왕자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벌레의 팔은 오래된 금속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어.
“상류 포식자의 길은 수순이 있는 법이지. 자네 같은 외래종은 바닥에서부터 딛고 일어서야 하네.” 정령은 갈고리 같은 곤충 다리로 왕자의 머리가죽을 움켜잡으며 말했어. “일어서게.”
왕자는 살이 뜯기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듯 정령에게 소리쳤어. “놓아라!”
정령은 또 한 번 껄껄 웃어. 표정은 없어. 단지 얼굴에 붙은 작은 버섯 돌기들이 수염 같았고, 그것이 들썩거릴 뿐이야.
“벌써부터 말을 사냥하려 드는가. 하룻강아지 같은 놈. 말은 초원 세계의 시민. 감히 너 따위 벌레나 먹는 존재가 거둘 수 있는 생명이 아니야.”
왕자는 분했어.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아는가!”
“알지. 알고 있단다.”
정령의 다리가 늘어났어. 곤충의 관절 사이 누런 포자들이 발포하며 다리를 연장했지. 그리고 탁한 눈을 두리번거리며 왕자 얼굴에 맞대었어. 벌레 더듬이는 왕자의 얼굴을 만지작거렸어.
“자네는 스스로 누구라 생각하는가?”
왕자는 더듬이를 뿌리치며 말했어.
“나는 왕자다. 웨일스의 왕자라 불린다.”
정령은 다시 웃기 시작해. 한참 동안 포자를 뿜어내며 껄떡거린 정령은 별안간 태도를 바꿨지. 곤충의 표피에서 스며 나오는 미세한 포자는 벌레의 몸을 감싸며 막을 형성해. 백색 구름은 벌레를 태울 듯 불처럼 타올라. 정령은 근엄한 표정으로 외쳤어. 목소리는 마치 쇠막대로 콘크리트를 긁어내듯이 카랑카랑해.
“나는 보다시피 버섯을 먹은 곤충이고, 지금은 버섯이 나를 먹었네. 그리고 버섯으로 이룬 왕관과 도포를 입었네. 나는 숲 바닥의 왕이야! 스스로 왕자라 말하다니, 자네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 존재인가? 나는 그걸 묻고 있네.”
정령의 다리는 왕자의 손을 낚아챘어. 곤충의 가시 돋친 날카로운 다리 때문에 왕자의 손목에 생채기가 났어. 피가 흘렀고, 피부에 묻은 백색 포자와 뒤엉켜.
“일단 나와 함께 가는 것이야. 숲에서 사는 법을 가르치겠네. 숲에는 여러 세계가 있어. 자네는 일단 최하층, 숲 바닥의 세계에서 시작해야 하네. 그것이 이 숲의 순리이네.”
왕자는 벌레가 의심스러워. 머뭇거리는 그를 보고 벌레는 위협하듯이 갈고리 같은 다리를 번쩍 들었어. 왕자는 화들짝 고개를 숙여. 정령은 단호히 말해. “그 얕은 수작 부리지 말고, 따라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