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고 싶었으나, 이제 배는 불렀어.
왕자는 이틀을 굶었어.
곪은 상처 때문에 발걸음, 그리고 호흡마저 둔해졌어. 먹이는 보이지 않아. 지면을 덮은 벌레들만 보일 뿐. 그들은 왕자 주위를 배회하는 듯해. 썩은 고기를 기다리는 하이에나들처럼. 이미 왕자의 발등 위로는 벌레 몇 마리가 간신히 살갗을 물고 버티고 있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지. 배를 채워야 해.
이 숲의 먹이는 살아있어. 그래서 쉴 새 없이 다리가 움직여. 마냥 앉아 기다려서는 먹을 수 없어. 왕자는 먹이가 보일 때까지 계속 걷기로 마음먹었어. 그래. 먹이를 찾는 포식자로 생을 마감한다면 적어도 궁전을 나온 최후로는 부끄럽지는 않을 거야.
서걱. 걸음마다 쓸리는 썩은 낙엽. 그리고 발 끝에 바스러지는 버섯. 그는 걸음을 멈추고 청록 빛으로 발광하는 버섯을 짓밟았어. 이틀 전 그것을 먹고 얼마나 괴로웠던가. 벌겋게 부은 입천장, 느슨해지는 장의 움직임, 이글거리는 살갗의 서늘함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아. 오늘 아침도 그는 거품을 물고 숲 바닥을 기었어. 온전히 버섯의 사체를 토해내고, 다시는 길바닥의 하찮은 것을 먹지 않겠다 마음먹었지. 왕족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야. 포식자는 무릇 양날의 칼을 휘둘러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는 것이라고 신하들은 말하곤 했어.
어느새 밤이야. 아직 어떤 짐승도 보지 못했어. 늘어진 몸의 무게에, 걸음은 더욱 느려졌어. 몸 안팎의 따가움은 여전해. 걷는 숲길. 그는 흐릿해진 눈을 깜빡였어. 저 멀리 흑색 풀밭 사이 간간이 보이는 청록색 빛을 발하는 버섯. 그가 응시하자 버섯은 제 몸을 움직였어. 공중에 몸을 뛰어 날아다니더니, 어느새 왕자 어깨에 내려앉아. 반딧불이야. 벌레는 꽁무니에 힘을 주며 빛을 깜박여. 왕자의 뺨에 청록 빛이 묻어났다 사라졌지. 왕자는 벌레가 자신을 조롱한다 느꼈어. 마치 “나도 먹어보지 그래?” 하고 으스대는 것처럼. 손을 들어 어깨를 치기도 전에 벌레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어.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지.
그 순간! 미약한 청록 불빛에 비친 검은 형체가 먼 곳에 드러났어. 왕자는 숨죽였어. 곧 발자국 소리가 들려와. 왕자는 눈을 감고 귀를 곤두세웠어. 두-둑. 질긴 섬유질이 세밀한 근육을 튕기며 찢어지는 소리. 누군가 풀을 뜯어먹어. 왕자는 얼른 몸을 낮추고 다시 시야에 집중했어.
검은 달빛 아래, 청록 반딧불이 무리가 자기장처럼
흑마 한 마리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어.
생각했지. 오늘 저것을 먹지 못하면, 자신이 굶어 죽어버릴 것이라고.
나무들이 비켜선 원형의 풀밭. 왕자와 검은 말이 대칭점에 서 있어. 그가 다가가려는 순간, 말은 귀를 곤두세웠어. 번뜩 고개를 돌려 왕자를 찾아낸 말은 으르렁거리듯 먹던 풀을 뱉어내는 소리를 내었어. 먹구름이 걷히고 온전한 달빛에 비친 흑마의 모습이 드러났지. 흰자위가 보이지 않는 검은 눈동자는 마치 궁전 안의 신하들 같아.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어. 말은 그를 주시한 채 머리를 흔들었고, 검은 갈귀는 달빛을 찌를 듯 가시처럼 번뜩여.
신하들의 작은 칼이 생각났어. 그리고 아버지가 떠올랐지.
왕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어. 자신에겐 어떤 무기도 없어. 팔과 다리 그리고 이빨 그것 뿐이야. 말은 한 번 더 푸르륵 하는 침 뱉는 소리를 내고는, 돌진하려는 듯 발굽을 들어 올렸어. 왕자는 오금이 저려. 살찐 말은 그를 간파한 듯한 검은 눈동자로 더욱 노려보았어. 왕자는 움직일 수 없었어. 흑마는 터벅터벅 다가와. 그리고 방패 같은 머리로 그를 밀쳤지.
턱-
육중한 몸이 실린 말의 주먹질은 무척이나 무거워. 왕자는 몇 걸음이나 뒷걸음쳤어. 그 와중에도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 왕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뿐이야. 거대한 말은 그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숲 뒤로 사라졌어.
빈 공간.
원형의 무대에서 그는 혼자 남았어.
왕자는 무릎을 꿇었지. 굴욕의 울림은 풀밭을 타고 주위로 울려. 그는 지면을 힘껏 움켜쥐었어. 패인 흙 사이로 작은 벌레들이 무수히 새어 나와. 왕자는 벌레들을 바라보았어. 그리고 머리를 흙 속에 박아. 입을 벌려 그것을 허겁지겁 삼켰어. 배가 채워질 때까지. 그렇게 흙과 벌레를 먹어치우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잠들었어.
굶어 죽고 싶었으나, 이제 배는 불렀어. 차가운 흙이 가득 묻은 이가 시려. 왕자는 궁전 식탁의 뜨거운 고깃덩어리가 생각났어. 시린 이가 무척이나 부끄러웠지. 왕족. 그것이 지금 왕자에게 실제일까. 그는 이제 고깃덩어리를 먹는 짐승에 지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