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 오브 웨일스 18 푸른 눈

길들여진 존재 자체를 만들기 위해 길들이는 것이야.

by 류인환

숲 속에서, 왕은 보았어! 푸른 눈을 가진 백발의 남성.

푸른 눈의 사내! 신하들이 그토록 찾는 새 왕비의 아비일 거야. 어둑한 밤. 그 늙은 사내는 죽은 짐승의 살을 허겁지겁 뜯어먹고 있었어. 왕은 풀숲 아래로 몸을 낮추고 그 광경을 유심히 보았지. 짐승 그 자체야. 달빛에 비친 동공은 늑대처럼 빛을 번뜩였고, 우걱거리며 날고기를 씹는 이빨과 턱은 핏물로 가득해. 왕은 환멸을 느꼈어. 신하들은 저 짐승을 새로운 왕으로 삼겠다는 것인가. 그동안 그들은 내게 왕 답지 못하다며 매번 채찍질하지 않았는가!


저것이 왕의 품종이라면, 그들이 말했던 제왕의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야. 그들이 길들이는 것이지. 무엇으로 만들기 위해 길들이는 것인가. 길들여진 존재 자체를 만들기 위해 길들이는 것이야. 제왕의 위엄. 덕목.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어. 신하들은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어.


왕은 시체의 뼛조각을 붙잡고 살을 뜯는 그 남성을 바라보았어. 곧 푸른 눈의 그 역시 신하들에게 붙잡힐 거야. 그리고 자신처럼 밤마다 밧줄에 묶인 채 길들임 당하겠지. 왕은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어. 자신이 도와주어야 할까. 어떻게 구원해줄까. 어서 멀리 도망쳐라 귀띔해주어야 할까. 지금 그는 대화조차 통하지 않을 듯 해. 그는 무엇을 원할까. 어쩌면 그는 숲의 삶이 처절해, 안식을 원할지 몰라. 왕이 된다는 것. 그래서 따뜻한 집과 음식을 보장받는 것. 그에게는 자유보다 귀중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그저 조용히 그를 지나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어. 돌이켜보면 푸른 눈의 사내도 지금 무척이나 괴로울 거야. 새 왕비. 그의 딸아이를 신하들에게 빼앗겼지 않은가. 적어도 궁전에 잡혀 들어간다면,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뒤의 일은, 왕은 모르는 일이야. 사실, 그런 도덕적인 감정이 그 사내에게 있을까도 의문이 들었지. 왕은 조심스레 몸을 돌렸어. 그때, 마른 풀을 밟고 말았어! 바스락 하는 소리가 났지. 푸른 눈이 흠칫 놀라 왕을 향해 고개를 돌렸어! 핏방울이 가득한 얼굴로. 왕은 그 일그러진 표정에 털이 곤두설 정도야.


푸른 눈은 벌떡 일어섰어!

그리고 입 속 가득한 날고기를 벹으며 왕에게 말해!


“아버지.”




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어. 그리고 문득 푸른 눈의 사내 발 밑에 있는 죽은 시체를 보았을 때! 그것이 자신의 아들임을 발견했을 때!


왕은 신하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을 때 처럼 눈앞이 아득해졌어. 다리가 일순간 뜨거워졌고, 곧 힘이 빠져 무릎을 꿇었어.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어. 자신의 왕자. 숲으로 떠난 대견한 아들. 그가 지금 차가운 시체로 숲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 조각난 사체로 말야! 백발의 짐승이 왕자를 죽였어! 그리고 참혹하게도, 먹었어.


왕은 귀와 목이 부풀어 오른 듯 먹먹해졌어. 탄성이라도, 비명이라도 내뱉고 싶었으나, “헷-헷” 하는 바람 새는 소리만 입 밖으로 나와. 죽은 왕자의 시체는 눈을 감지 않았어. 여전히 빛을 발하는 금색 눈동자는, 지금 금색 눈의 아비를 보며 말하는 듯 해. “아버지 말대로 산으로 갔어요.”


왕은 계속 말이라도 뱉으려 했지만, 기도에선 궁전 철창 쇠문 부딪히는 소리 같은 신음 밖에 나오지 않아. 무릎 꿇은 왕은 고개를 들어 백발의 사내를 보았어. 그는 달 같이 푸른 눈을 크게 뜨고는 놀란 왕을 지켜보았지. 그리고 한번 더 말해. “아버지!”


읊조리는 사내의 주둥이에선 피가 흘러나와. 저 피는 왕자의 것이리라! 왕은 몸이 떨리기 시작했어. 조롱하는 것인가. 내 아들을 죽였다고 내게 알리는 것인가. 피가 끓어오르고 손아귀에는 힘이 들어찼어. 바닥에 잡힌 흙과 풀이 투-툭 하는 소리와 함께 뜯어져. 뺨을 뜯긴 지면이 외치는 단발의 비명처럼.


왕은 떨리는 이빨을 부딪히며 백발의 사내에게 대답했어.“ 그래. 내 눈 색깔을 보니 알겠는가. 내가 그의 아비다. 내 아들에게 그런 것처럼, 내가 너를 잘근잘근 씹어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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