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는 그 느낌을 배고픔이라고 생각했어.
왕자의 몸은 새것 같아.
잠든 사이, 몸을 바꿔 입은 것처럼. 피부는 윤기로 반들거렸어. 그루터기에 기대어 앉아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지. 무거웠던 어깨, 따가웠던 목 그리고 침묵했던 발 모두 기지개 켜듯 꿈틀거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나뭇가지 사이 얇은 피부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 날다람쥐가 떠올랐지. 그중 하나는 정령일 거야. 왕자는 쉴 틈 없이 조잘대는 정령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어. 그때 검은 나무 아래로 날다람쥐 하나가 무릎으로 떨어져.
정령이 말했어. “이제, 내가 준 몸으로 이 숲에서 살아가겠군요. 조언하자면, 삶의 목적 같은 것을 하나 세워두는 것이 좋겠어요.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이곳. 먹고 먹히는 매일의 전쟁엔 명분이 필요하니까요. 그것은 살육의 사면증이기도 하고, 배신을 선의로 덧칠할 수 있는 연설문 같은 것이죠.”
“짐승에게 명분이 왜 필요한데?”
왕자가 되묻자, 날다람쥐는 검은 눈을 깜빡였어.
“당신은 왜 살고 있나요? 왜 몸을 지키려 그렇게나 아등바등하고, 배를 채우려 흙까지 파먹었나요. 숨이 붙어있는 것이 당신에게 기쁨인가요. 단지 몸을 부리기 위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몸의 노예가 될 뿐이에요. 몸이 있는 이유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기 위하여서예요. 당신은 내가 준 것으로 무엇을 할 건가요?”
“너의 목적은 무엇인데?”
왕자가 묻자, 날다람쥐가 재빨리 대답해.
“내 목적은 유희이죠. 굳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날다람쥐는 이내 몸을 돌려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왕자는 여전히 그루터기에 앉은 채, 날다람쥐의 질문을 떠올렸어. 자신에겐 어떤 유희가 있나. 작은 짐승들을 발견하는 것. 쫓아가는 것. 붙잡는 것. 죽이는 것. 먹는 것. 사냥. 그것이 전부야. 부족했어. 빠진 것이 있어.
숲의 삶을 바랐던 아버지를 떠올려보았어. 아버지에겐 어머니가 있었어. 지금은 새 왕비가 있지. 왕자는 새 왕비를 그려보았어. 같은 모양의 눈과 체모를 가졌지만 다른 색채, 같은 몸을 가졌지만 조금 더 부드러웠던 형상. 궁전 안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신비로운 냄새. 마치 정원에서 새로운 꽃을 발견한 것처럼. 그래, 새 왕비. 그것을 생각할수록 왕자는 살갗이 뜨거워지고 마른침이 스며 나왔어.
왕자는 그 느낌을 배고픔이라고 생각했어.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 보이지 않는 유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이곳. 어딘가 새 왕비 같은 것이 있을지 몰라. 풀숲을 걷기 시작해.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질긴 짐승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죽은 고기의 냄새야. 왕자는 입맛을 다셨지. 일단 배를 채워야 해. 몇 걸음을 더 갔을 때, 풀숲에 엎드려 죽은 짐승이 보여.
그 시체는 왕자 자신이야.
자신이 죽은 것인가.
왕자는 시체를 골똘히 바라보았어. 얼굴. 팔과 다리. 그리고 침묵했던 발까지 모두 자신이야.
“아...” 왕자는 무릎을 꿇어 그 시체를 쓰다듬었어. 어둠 속 희미하게 보이는 입술. 거품을 물고 있었어. 주위에는 악취 나는 토사물이 흩뿌려졌어. 알갱이 중에 붉은 버섯 조각이 보여. 정령이 먹으라 말했던 붉은 버섯. 그것을 먹고 죽은 듯 해. 얼굴 아래 몸은 차가웠고 피 묻은 상처로 가득해.
자신의 몸은 낫지 않았어. 정령이 치유해준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지금 왕자의 몸은 무엇인가? 분명 숲의 여느 짐승과는 다른 자신의 몸이야. 죽은 왕자의 주변의 핏물 웅덩이. 자신의 모습이 비쳐. 왕자는 얼른 고개 숙여 바라보았어.
달빛에 비친 그는 백색 체모,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어.
숲 속 누구의 몸이었을까. 그리고 그 누구는 죽은 것인가, 살아 있는 것인가. 지금 백색 체모와 푸른 눈의 몸은 살아 있음에. 또 의문이 들어. 왕자. 자신은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지금 검은 체모와 황색 눈은 죽어있지 않은가. 왕자는 자신이 죽었음에 슬퍼해야 하는 것인가. 자신은 살아있지 않은가.
시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몸 주위에 흰 버섯이 보여. 벌레 정령이 떠올랐지. 그가 이것을 빼았을지 몰라. 정령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야. 왕자는 자신의 죽은 몸을 누구에게도 줄 수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