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왕비는 표범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누군가,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걸어왔어. 지는 태양 아래 검은 숲. 그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백색 표범.
왕비의 이지러진 눈에 비친 백색 표범은 하나로 일렁이는 백색 증기 덩어리와 같았어. 표범은 부드럽게 밀려와서는 붉은 혀로 왕비의 뺨을 핥아. 그녀는 따가운, 하지만 뜨거운 혓바닥을 느꼈고, 곧 쓸린 잔털의 고통을 잠재우는 시린 바람을 느꼈어. 왕비는 흐릿한 표범의 목을 감싸 안았어. 그리고 힘껏 껴안았지. 따뜻했어. 표범은 작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왕비의 피 맺힌 피부를 핥아주었어. 표범은 그녀의 목을 조심스레 물어 몸을 일으켰어. 왕비는 표범의 등에 올라타 맥없이 엎드렸어. 부드러운 털에 뺨을 파묻은 채 왕비는 잠들었지.
그 털가죽 아래, 단단히 움틀 거리는 표범의 등 근육에 눈을 떴을 때, 숲 속 버려진 오두막 한 채가 보였어. 문 사이로, 조그마한 암컷 표범이 뛰어와 반겼지. 왕비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와, 덩굴이 점령한 낡은 나무 침대 위에 누웠어. 표범은 밤이면 온기를 내뿜는 날고기를 왕비에게 먹였으며, 낮이면 딸과 함께 왕비 곁에 누워 몸을 데워주었어. 백색 표범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야. 왕비는 목숨은 부지했으나, 병 걸린 몸은 더 앓아갔어.
왕비와 같이 몸을 맞대고 체온을 데울수록, 표범 또한 점점 야위어 갔어. 그는 가끔씩 멍한 침을 흘리기도 했고, 밤마다 허공을 향해 울부짖기도 했어. 어떤 날은 어린 딸을 물어 죽이려고도 했지. 그때마다 왕비는 침대를 박차고 기어가 힘껏 새끼를 안고 그를 막아서고는했어. 그럼에도 그는 절대 왕비를 물지않았어. 대신, 표범은 밖으로 뛰쳐나갔어. 정신없이 짐승을 물어 죽이고는, 먹이를 물고 오두막에 돌아오곤 했지. 그때마다 어린 딸과 왕비는 웃으며 그를 반겨주곤했어.
어느 날 표범이 왕비에게말했어.
자신이 인간이던 시절을기억한다고. 왕비를 곁에 두는 이유는 인간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왕비와 함께 누워 그녀의 옷깃 냄새를 맡으며 예전을 추억한다고 했어. 어린 시절, 이 오두막에서 인간과 함께 자란 시간들.
표범은 왕비에게물었어. 너도 나와 같은 삶을 삶지 않았냐고.
왕비는 말했지. 자신은 인간이기에, 당신과는 다르다고. 백색 표범은 왕비를 한참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어. 너와 나는 같은존재라고.
긴 시간이 지나고 지금. 그녀는 눈을 떴어.
얼마 만에 정신을 차린 것인가. 몸을 움직일 수 없어. 힘 빠진 고개는 마침 문고리를 향해 쓰러졌고, 뿌연 눈동자는 당분간 그곳에 점을 찍게 되었어. 다행이다. 그렇게나마 돌아올 그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왕비는 맑은 정신으로 깨어난 지금이,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이란 걸 깨달았어. 그는 얼마 전 인간에게 납치되었던 딸을 찾으러 갔어. 어느새 왕비는 백색 표범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 만큼,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어.
저기 백발의 사내가 돌아오고있어. 늘 그래 왔듯이, 제정신을 차리고 멋쩍게 돌아오는 매 번의 순간처럼. 왕비는 설레었어.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그를 힘껏 안아 줄생각이었지.
푸른 눈의 사내는 오두막을 조심스레 훑어보다 왕비를 발견했어. 천천히 왕비 곁으로 걸어왔어. 그리고 왕비의 가는 목을 덥석 물어버렸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왕비는 숨멎었어. 그 찰나에, 왕비는생각했지. 눈발 같은 저 백색 털. 푸른 눈. 송곳니.아름답고 따스하다고.그가 나를 어디론가 또 데려갈 생각이구나하고. 왕비의 탁한 눈으로 보지 못했던 건, 지금 백색의 표범은 핏빛 상처로 가득했단 것. 그리고 그 푸른 눈의 홍채 사이 노랗게 광기 어린 존재가 숨어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