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미안함. 타오르는 거부감. 사이에서 감도는 자욱한 불쾌감.
며칠 전,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 기일에 내려오라고. 아들 둘이 빠지는 건, 아버지가 자식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겠냐고. 나는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제사에 오는 걸 알 수가 없다. 감격할 수도, 섭섭할 수도 없다. 존재하지 않으니까. 자식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건 누구에게 그렇게 보인다는 말인 건지. 어머니는 대신, 주말에 산소를 찾아가자고 했다.
주말, 동생과 함께 창원에 도착했다. 공용 자전거를 타고 단숨에 집까지 내려왔다. 달리는 길. 수북이 쌓인 낙엽. 낡은 동네. 이름 모를 동네 꼬마들. 마치 여행하는 듯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남아 근처 목욕탕을 들렀다. 몇 년 만에 동생의 등을 밀어주었다. 상쾌한 밤바람을 맞으며 휴대폰을 열었을 때, 어머니 전화가 네 번 왔었다. 도착할 시간인데 연락이 안 되어 걱정했다며.
다음 날, 산소를 찾았다. 차로 두 시간을 몰아 도착한 아버지가 태어났다는 이름 모를 동네. 가시 돋은 아카시아 나무 사이를 한참 비집고 들어가면 공터처럼 변한 할아버지의 산소가 나타난다. 생전 할아버지를 본 기억은 없다. 어린 시절부터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뛰놀았다. 근처에 감나무를 심은지 20년 만에 열매가 맺혔다. 가지를 힘껏 당기고 수북이 따 냈다. 동생과 장난을 치면서.
차로 조금 더 이동해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곳곳에 짐승이 헤집은 듯 파인 구덩이들이 생겼다. 할머니는 한숨 쉬며 봉분의 풀을 꺾었다. 어머니도 말없이 옆에서 낫질을 했다. 그 무게감을 뒤로하고, 나는 근처 숲길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늘 가던 식육식당에서 배불리 먹고 돌아왔다. 유일하게 내가 그들에게 베풀 수 있는 시간이다.
일요일 늦은 밤 짐을 풀고 자리에 누웠을 때, 늘 맺히는 건. 밀려드는 미안함 그리고 타오르는 거부감. 사이에서 감도는 자욱한 불쾌감.
오늘 밤, 어머니는 제사를 지내는 작은 아버지들께 죄송하다 연락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죄송한 일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침묵했다. 나 또한 침묵했다. 오랫동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그곳에 있을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그곳에 대한 거부감 사이에서 감도는 불쾌감을 뒤집어쓴 채. 내게 제례는 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