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을 주시하는 듯 해. 마치 온몸에 눈 박힌 거인처럼.
또각. 또각.
핏자국을 따라 걷는 샛별의 좌우로 늘어선 기계들은 온몸에 렌즈가 박혀있어. 마치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처럼. 샛별은 고개를 정면의 회복실에 둔 채 두 팔을 나란히 뻗어 거인들의 살갗을 쓰다듬었지. 그들 몸 군데군데 박힌 매끄러운 렌즈 표면이 그녀 손가락에 닿았지. 그럼에도 그들은 어떤 미동도 없어. 회복실엔 유리관으로 밀폐된 침상들이 늘어섰어. 그중 하나는 안쪽 면에 두터운 검댕을 칠한 듯 검게 반짝였지. 그 주위로 피가 흥건히 덮여 있었어.
딸의 것이 맞아! 핏자국은 딸의 어깨, 등허리 그리고 종아리를 도장처럼 찍어 놓았으니까. 그 옆에 동맥이 끊어진 기계 팔 하나가 널브러져 있어. 손바닥에는 딸의 피가 흥건했지. 샛별은 무릎 꿇고 몸을 숙였어. 그리고 철제 손가락에 제 것을 깍지 꼈지. 그녀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철제 손은 찰흙처럼 구부려졌어. 금속 손바닥의 절개선이 일그러지며 투명한 대롱이 튀어나왔어. 그 안에 살점이 들어 있어.
‘-‘
병원이 절규했어!
지면의 진동과 함께 실내 모든 조명이 막혔던 숨을 내뱉듯 깊게 깜박여. 샛별은 구두 굽에서부터 밀려오는 전율을 느꼈지. 실내 잡다한 화면들이 켜졌어. 샛별이 출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복도에선 백개의 눈이 달린 괴물들이 제 몸을 추스르고 있었지. 그들의 다리 사이로 장난감 로봇 하나가 걸어오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어.
“나는 사회다.”
샛별은 다소곳이 쪼그려 앉아 은빛 대형견을 쓰다듬었어. 개는 일직선의 빛을 그녀 얼굴에 터뜨렸지. “당신은 인간의 복제품. 4년 전 화재 당시 불에 탔던.” 샛별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어. “맞아요. 어떻게 알았나요? 사회 씨.” “사회가 기록했으니까.” 개는 고개를 갸우뚱 젓고는 상체를 들어 앞발을 그녀 무릎 위로 얹었지. 그러곤 철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꼬리를 흔들어. “호호” 샛별은 입술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웃었어. 그리고 매끄러운 개의 목덜미를 매만지며 부드럽게 물었어. “그런데, 내 딸에게 상처를 입힌 게 당신인가요?”
“그렇다. 사회가 당신 복제-.” 샛별은 개의 목덜미를 바스러뜨렸어. 머리가 떨어져 나간 개는 벼락 맞은 듯 꼬리를 바짝 세운 채 비틀비틀 춤을 추며 도망쳤어. 그러자 납작한 다리를 가진 괴물이 그녀 곁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왔어. 걸음은 마치 뱀의 춤 같았지.
“그렇다. 사회가 당신 복제품의 심장을 찔렀다.” 말을 끝맺은 괴물은 집게 팔로 그녀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어. 샛별은 집게를 뽑아냈어. 그리곤 고운 손가락을 구겨 넣어 기계 내부의 회로들을 한 움큼 쥐었지. 괴물은 뱀 다리를 쭉 뻗으며 쓰러졌어. 그 모습은 마치 무용수의 동작 같기도 했고, 만화영화에 나오는 악당의 익살스러운 최후를 흉내 내는 것 같기도 했지. 괴물은 바닥에 누워 뱀 다리를 이리저리 경쾌하게 흔들었어.
반면에 그녀의 손은 괴물의 뱃속 날 선 파편에 긁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지. 다만 다시 살이 차올라. 그녀는 자신의 연약한 손을 바라보며 읊조렸어. “왜 딸을 죽이려고 했는지가 궁금해요.”
저 멀리 은빛 개가 꼬리를 흔들며 다시 다가왔어. 목은 금세 새것으로 교체되었지. 개는 그녀 앞에 발라당 눕고는 배를 내보인 채 한참을 뒹굴며 말했지. “사회는 개체를 훼손하지 않는다. 심장을 찌른 이유. 복제품의 생채 조직을 원본 기록과 대조하기 위해.” “왜 확인하려 드나요? 그리고 당신 때문에 딸은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나긋이 개의 배를 눌렀어. 그리고 팔다리를 하나씩 뽑아내었지. 개는 미동 없이 목을 꼿꼿이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어. “기록을 위해서. 그리고 딸이 죽었어도 미지의 복제품이 존재한다. 개체는 당신 하나로 충분하다.”
"미지는 누구인가요?"
그녀 질문에 개는 대답하지 않았어. 어느새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이 다가와 딸의 심장을 관통했던 철제 손을 분해했어. 그리고 딸의 살점이 박힌 유리 대롱을 꺼내고는 저 멀리 사라졌어.
“복제품. 당신에게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
회복실. 잠든 노인들과 그녀만이 남은 공간을 사회의 목소리가 채웠지. 샛별은 벽을 매만지며 물었어. “당신은 날 해칠 건가요?” “해칠 이유가 없다. 사회는 개체를 보존한다. 당신의 생체 나이 32. 3년 후 사회와 계약을 맺기 전까지는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다.”
“사회 씨, 나는 무엇인가요?” 샛별이 금속 벽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어. 알루미늄 벽에 그녀 입김이 백색 불길처럼 번졌다 사라지는 동안에도 사회는 대답하지 않았어. 회복실로 밀려드는 거인들은 딸의 피와 금속 잔해들을 말끔하게 치워놓았지. 그녀는 회복실을 나와 병원을 둘러보았어. 어느덧 백발의 사람들이 실내로 들어와 주변을 서성거렸어. 태연했지. 방금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거야. 알았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 샛별은 그녀를 힐끔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멸시를 느꼈어. 그들의 눈은 샛별의 얼굴, 옷차림보다 검은 머리카락을 향했지. 그녀가 그들의 눈을 마주친 채 머릿결을 쓸어내리자, 그들은 관심 없다는 듯 제 갈길을 갔지.
유독 한 남자만 떠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어.
그는 별안간 고개를 전율하며 표정을 바꿨어. 멸시는 애정으로 변했지. 그는 기름을 바른 듯 반듯하게 넘긴 은빛 머릿결을 귓바퀴 위로 쓸어 넘겼어. 그 역시 이곳 사람들 답게 흠잡을 데 없는 피부와 이목구비를 가졌지. 그는 반질한 진회색의 더블브레스트 정장 상의를 고쳐 매고는 뚜벅뚜벅 격식 있는 구두 굽 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다가갔어. “어린 아가씨가 어떤 일로 병원에 왔나?”
샛별은 대답하지 않고 병원 출구를 향해 또각또각 걸어갔어. “버르장머리 없기는.” 그녀 뒤에서 장난스럽게 비아냥거리는 신사의 목소리가 들렸지.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어. 그리고 신사에게 다가갔지. 백발의 남자는 손바닥을 그녀 앞으로 내보이며 미소를 지었어. “어른이 인사를 했으면 대꾸를 해야지 꼬마야.”
샛별은 사회에게 보였던 화사한 미소를 지었어. “당신은 몇 살인가요?” 신사는 같은 웃음을 내보였어. “몇 살 같아 보이나?” “마흔?” 신사는 만족한 웃음으로 말해. “곧 아흔이란다.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가며 원숙해진다는 것. 너 같은 자연인은 가늠할 수 없지.”
“당신은 어떻게 젊음을 유지할 수 있나요?” 샛별의 물음에 신사는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두 팔을 내저었어. “이곳 사람이 아닌가?” “신사 씨. 보면 알잖아요. 검은 머리카락은 나밖에 없잖아요.” “말투 하고는… 그럼 어디서 왔니?” “산에서 왔어요.” 신사는 눈썹을 지긋이 내리고는 진중한 표정을 지었어. 두 걸음 정도를 뚜벅뚜벅 걸어 그녀와 간격을 유지하고는 팔짱을 낀 채 말했지.
“산속의 소녀라. 아니, 소녀 같지는 않아. 서른이 넘어 보이는구나. 이제 나이에 대한 감이 없어서 말이야. 우리에게 외면적인 나이는 선택사항이란다. 아무튼 산에 숨어 산다고 사회의 눈을 피할 수 없지. 그것 또한 사회의 뜻일 걸세. 그와 얘기는 해보았나?” “얘기는 했지만, 아직 계약하지 않았답니다.” 신사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어.
“자유의 몸! 그렇지. 내버려둔 것이군. 부럽네. 할 일 없는 아이 같은 기분일 거야. 사실 꼭 부럽지만은 않지. 사회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특히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산속에 있었다는 것. 거리에 내팽개쳐진 길고양이와 다름없거든. 먹이를 주둥이에 가져다주어도, 손등을 할퀴는 짐승 말이야.”
그의 비아냥에 그녀는 눈길을 거두고 말을 돌렸어. “신사 씨. 당신의 외모는 아름답지만 눈이 꽤 빨갛네요. 마치 토끼처럼.” 신사는 잠깐 무표정을 지었어. 그러다 하품하며 눈을 비비며 말했어. “긴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단다. 도시가 정전이 되면 안심하고 밖을 돌아다닐 수가 없거든. 차라리 집 문을 걸어 잠그고 잠드는 것이 낫지. 사회가 감시하지 않는 거리. 옛사람들의 언어로 천하다고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