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밀실이 대답했어. “목성.”
장미는 자동차 안에서 목성 무릎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었어.
허벅지에 닿는 그녀 숨결은 금세 정돈되었어. 방금 심장을 뚫린 사람 같지 않았지. 비현실적이야. 혹시 장미의 죽음에 현실을 놓아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자신은 사고로 의식을 잃고 긴 꿈의 여정을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장미의 말이 생각났어. ‘당신은 상처가 낫지 않네요.’ ‘나는 복제품이에요.’ 새근거리는 장미의 앳된 표정과 그 아래 피로 물든 붉은 파자마. 목성은 장미의 옷깃을 조심스레 풀어헤쳤어. 그리고 상처를 들쳐보았지. 고운 살결 중심에 동전 만한 구멍이 있어. 뒤틀린 뼈와 붉은 살점 사이 좁쌀만 한 틈 사이로 움틀거리는 심장이 보였지. 목성은 그 날것의 움직임에 눈 앞이 아득해지며 모든 피가 증발하는 듯해. 마치 제 몸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그 와중에 생각했어. 분명 장미의 상처가 아물고 있다고.
“무얼 보-요?”
장미는 목소리만큼이나 또렷한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았어. 목성은 화들짝 놀라 옷깃을 덮어버렸지. “사, 상처가…” “손-지 말아요.” 장미는 다시 눈을 감았어.
차창 밖 거리에는 어떤 자동차도 움직이지 않아. 그것보다, 도시는 암흑으로 변했어. 빛의 도로 만이 긴 선을 그어놓을 뿐이야. 거리의 사람들은 초나 랜턴 같은 것을 든 채 곳곳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지. 누군가 목성이 탄 자동차에 달려들었어! 차가 멈췄어. 창문을 열자 백발의 사내가 말을 걸었어. “차를 어디서 구했소?”
“왜 물어보시는 거죠?” 목성의 물음에 어이가 없다는 듯 사내는 대답했어. “지금 시내의 모든 것이 멈췄잖아!”
백발의 사내는 목성의 검은 머릿결을 보고는 금세 말을 놓았어. “사회가 방금 동면했어. 지금 우리는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어. 너는 젊음을 받지 않았으니 사회의 마지막 말을 못 들었겠구나. 바이러스가 퍼졌어! 어떤 도시의 지성이 저지른 것인지도 몰라. 지금 우리 사회는 지하 깊은 곳에 숨어 복구 중이야.”
“사회가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않나요?” 목성은 재킷을 벗어 장미의 몸을 덮으며 말했어. 백발의 남자는 피가 흥건히 묻은 그녀를 발견했어. “그 소녀는 어떻게 된 건가!” “기계가 그녀를 덮쳤어요.” 목성의 말에 사내는 절망했지. “분명 다른 도시의 짓이야. 우리 사회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 그들은 서로를 잠식하려 안달이지.” “왜 사회는 서로의 몸을 가지려 드나요?”
목성의 물음에 사내는 머뭇거리다 대답했어. “태초부터 우리가 그렇게 키워냈단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지.” 웅성거리는 소리에 목성은 뒤를 돌아보았어. 저 멀리 백발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지. 목성은 얼른 창문을 닫았어. 사내는 닫힌 창을 두드리며 외쳤어. “나를 태워다오! 다른 안전한 도시를 알아!”
차는 금세 그들과 멀어졌어. 그리고 화훼 빌딩 내부로 진입했지. 목성의 발이 화훼빌딩 지면에 닿았을 때, 병원에서 들었던 그 거대한 나팔소리가 울려! 그리고 화훼빌딩의 모든 조명이 일순간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지. 그녀를 안은 목성의 다리가 흔들거려. 엘리베이터가 열렸어. 황급히 9층 백색 밀실에 도착했을 때. 백색 밀실이 대답했어.
“목성.”
할아버지의 목소리였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 방에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