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몰랐고, 처절한 의식으로 장미가 태어났다는 걸
장미는 차창 바깥을 바라보는 중이야.
거리는 점점 밝아져. 빌딩 위 검은 하늘이 낯설 만큼. 목성은 팔짱 낀 채 졸고 있어. 셔츠 팔꿈치에 피가 맺혔지. 장미는 흙바닥에 넘어지던 순간, 그가 두 팔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았던 게 떠올랐지. 잠든 목성의 팔꿈치를 건드리며 말했어. “이렇게나 밝은데. 이곳 사람들은 잠을 잘 수 있나요?” 목성은 쓰린 감각에 눈을 떴어. 방금까지 흐릿한 꿈을 꾸었지. 기억나는 건 자신이 백색 밀실에 앉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그리고 검은 방과 거울. 미간을 찌푸려 보았지만 그것뿐이었어.
목성은 고개 돌려 장미를 바라보았어. 그녀는 검은 홍채를 일렁이며 그의 팔꿈치를 바라보는 중이야. 긴 머리카락에서 나긋이 밀려오는 체취는 텁텁한 꿈의 기억을 금세 짓눌렀어. 목성은 떨리는 입술로 겨우 되물었어. “왜 잠을 잘 수가 없나요?”“밝잖아요. 마치 백야 같아요.” “백야를 본 적이 있나요?”
“러시아에서.” “러시아? 그곳은 어떤 도시인가요?” 목성의 물음에 장미는 한동안 멈춰섰어. 그러다 눈길을 살짝 내렸지. “그런 곳이 있어요.” 장미는 다시 차창을 바라봐. 목성도 몸을 돌려 반대편 차창을 바라보았어. “이곳에는 노인이 없나요?” 장미가 말을 걸었어.
“노인? 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요? 이 도시에 흔치 않아요. 도시 밖에는 많겠지만.” “그런데 다들 휜 머리를 하고 있네요. 당신과는 다르게.” 목성은 차장에 비친 자신의 흑발을 휘넘기며 대답했어. “백발은 상징이에요. 자신은 앳된 얼굴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무척이나 나이가 많다. 내세우는 것이죠. 나는 실제로 젊어요.”
장미는 아무런 대답이 없어.
목성이 고개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장미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중이야. 그리고 휘둥그런 입술로 말해. “반대로 그들은 실제로 나이가 많다는 것이네요!” “네. 당신의 원본이라는 미지와 같은 연도에 태어난 사람도 있을 거예요.” 장미는 여전히 입술을 다물지 못했지. 목성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다 고개를 황급히 젓고는 퉁명스럽게 물었지.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이에요?”
장미는 목성의 구겨진 재킷 소매를 황급히 두 손으로 꽉 잡고는 외쳤어. “그렇다면 그들은 영원한 젊음을 누린다는 말인가요!” “아…” 목성은 그제서야 알아챘지.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 장미를 만든 소문의 여자. 아마도 그녀도 과거의 사람들처럼 영생을 위해 자신을 복제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그 영겁의 세월 동안 세상과 떨어져 버렸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사회에게 젊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처절한 의식으로 장미가 태어났을 거라고. 흔들리는 그녀 동공을 바라보며, 목성은 다시 한번 심장이 묵직이 내려앉는 느낌이었지.
목성은 자신의 소매를 집은 그녀 손목을 부드럽게 쥐며 말했어. “영원한 젊음은 맞아요. 하지만 영원한 삶은 없죠. 우리들의 수명은 사회가 정해주거든요. 십 년에 한 번씩 사회가 알려줘요. 너는 더 젊어질 수 있다거나, 아니면 이제 늙어갈 것이란 걸.” “사회라는 것은 어떤 사람들의 모임인가요?” “사회는 모임이 아니에요. 인공 지성이죠.” “인공 지성?” “판단하는 유령이에요. 이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유령들의 집합체이죠.” “사람들은 왜 유령에게 복종했나요?” “복종한 것이 아니에요. 선택한 거죠. 영원한 젊음을 대가로. 게다가 사회는 사람들보다 정의롭거든요. 법 그 자체이죠.”
“목숨을 대가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이야기 같아요.” 장미는 목성의 소매를 더욱 세게 잡았어. 목성은 고통을 참았어. 고양이처럼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악마가 아니에요. 우리가 그들의 조상을 만들었어요. 컴퓨터를 알아요?” “컴퓨터? 기계를 말하는 것인가요?” “네.” “본 적이 있어요. 게다가 능숙히 다를 수 있죠. 어쩌면 사회라는 컴퓨터도 내가 다룰 수 있겠네요.”
목성은 고개를 저었어. “수십 년 전이라면 그럴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인간은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설계하는지, 그리고 서로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알 수 없어요. 그렇게 된 지 오래되었죠.” “무섭지 않나요?” “세상은 늘 그래 왔어요. 오백 년 전에도, 천년 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지배되는지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종교. 국가. 기업. 이런 것을 믿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럼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장미가 물었어. 목성은 턱을 괴고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어. 그리고 말했지. “나는 당신이 수년 전 사회에게 발각당한 복제인간이란 것을 믿어요.” 장미는 그의 소매를 집었던 손을 황급히 떼고 몸을 차창에 밀착했지. “당신이 나를 지켜보았나요?” “사회가 말해줬어요.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 “그렇다고 그들이 당신의 얼굴을 아는 건 아니에요.” “그들이 날 해칠까요?” “그들이 당신을 알아보아도 해치지 않아요. 사회가 승인했으니까요.”
장미는 잠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어. 그리고 입을 열어. “사회와 얘기하고 싶어요.” “누구든 사회랑 얘기할 수 있어요. 사실 지금도 사회가 엿듣고 있을지 몰라요. 다만, 사회는 우리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어요. 언젠가 사회가 말했죠. 침묵으로 답해줄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다고.”
“사회. 들려요?” 장미는 허공에 외쳤어. 그러고는 동그란 눈으로 목성과 차 안을 번갈아 쳐다보았지. 목성은 그녀의 눈짓을 흉내 내며 말했어. “사회는 우리들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아요. 그가 필요할 때 말을 걸어요. 그전까지는 우리들의 말과 행동, 표정을 층층이 기록해 둘 뿐이죠.” “사회는 어떻게 우리에게 말을 거나요?”
목성은 보조개 핀 입가로 대답했어. “사회는 유령이에요. 이 차 안에서도 말을 걸 수 있어요. 그리고 백발의 사람들은 그런 것도 필요 없어요. 귓가에 음성이 흘러나오거든요. 마치 환청처럼.”
장미는 목성의 귓가를 유심히 쳐다보며 물었어. “당신의 귓가에서도 사회의 혓바닥이 붙어 있나요?” “아니오. 저는 아직 젊음을 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계를 차고 있어요. 사회는 말했어요. 자신과 계약을 하기 전까지는, 인간의 몸에 손대지 않는다고.” “계약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장미의 물음에 목성이 마른침을 삼키고 대답했지. “첫 계약을 거부하면 이 도시를 떠나야 해요. 저는 아직 결정할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서른다섯이 계약할 시기거든요.” “도시를 떠나면 어떻게 되나요?” “다른 도시를 가면 돼요. 도시마다 각자 다른 사회들이 돌보고 있거든요. 그곳은 이곳과 다른 세상일 거에요. 빛의 도로가 없을 수도, 젊음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죠. 어쩌면 그곳에는 황소를 집마다 기르고 있을지도 모르죠.”
마침 차가 멈춰 섰어.
목성과 장미는 함께 내렸어. 백색 자동차는 유유히 제가 있던 곳으로 떠나갔지. 목성은 사라지는 차를 바라보는 장미 손목을 잡았어. 생각보다 가늘었지. “이곳이 병원이에요.” 목성이 가리킨 건 사각형의 거대한 암흑이야. 밝은 도시에 세워진 검은 건물은 형체마저 알아보기 힘들었지. 모든 면을 깊은 흑색으로 칠해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장미의 감탄에 목성이 대답했어. “그래서 더욱 돋보이죠. 마치 블랙홀이 도심에 우뚝 선 것처럼. 병원에는 외부의 환경에 민감한 장비들이 많아요. 먼지 한 톨. 입김 입자 하나에도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외벽은 빛마저 흡수해버렸죠.” “어쨌든 나는 그곳에 들어가야 해요.”
“걱정 말아요. 할아버지는 그런 장비들을 거부했어요. 지상 1층 회복실에 있어요. 누구든지 출입이 가능해요.”
목성은 금세 침울해진 표정으로 앞장섰어. 할아버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더 악화되었을지 몰라. 장미는 목성의 쳐진 등 뒤에서 그의 손목을 잡았어.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따라갔지. 목성은 그녀 손아귀에 혈관이 짓눌리는 듯 아팠지만 뿌리치지 않았어. 대신 혼잣말을 낮게 읊조렸어. “아무래도 나는 홀린 거야.”
사각형의 거대한 블랙홀. 목성과 장미가 다가오자, 형체 없는 문이 좌우로 열렸어. 내부는 늦은 오후 햇살처럼 아늑해. 다만 어떤 냄새나 향기도 흐르지 않아. 특별한 요철 없이 펼쳐진 실내는 온통 금속으로 이루어졌어. 실내를 걷던 백발의 사람들은 목성과 장미를 휘둥그레 쳐다보는 중이야. 흙과 먼지를 뒤집어쓴 그들은 잘 닦아놓은 병실에 떨어뜨린 화분 같았으니까.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씻고 옷부터 세척해요. 사람들이 불안해해요.” 목성이 지나치는 사람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장미의 귓속에 속삭였어. “저들은 왜 우리를 두려워 하나요?” 장미가 간지럽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물었어. “아무리 오래 살 수 있어도, 목숨은 하나뿐이거든요. 우리 꼴이 이렇잖아요. 알 수 없는 사람. 아무튼 샤워실은 저기 장난감이 안내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