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명 목성. 복제 시작.”
눈을 떴어. 이곳은 화훼 빌딩의 백색 밀실.
다만 목성이 늘 보던 시야가 아니야. 중점에 출구가 있는 정사각형의 거대한 벽이 보여. 그 주위로 천장과 바닥, 좌우의 벽이 마름모꼴로 펼쳐졌지. 2차원 도면을 보는 것처럼 말야. 목성은 고개를 돌렸어. 그러자 별안간 눈 앞이 깜깜해졌어! 시야는 급격히 좁아져 가로 5mm 폭의 기다란 세로 선으로 변했지. 선 안쪽을 유심히 보았어.
누군가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어!
목성은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혔어. 그러자 그도 고개를 젖혔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처럼. 확실하진 않아. 추측할 뿐이지. 목성은 비친 자신의 모습을 향해 걸어갔어.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로 알아챘어. 이곳은 또 하나의 밀실이라는 걸. 할아버지는 백색 밀실에 숨겨진 공간이 있다고 말한 적 없어. 목성은 지금 환각을 보는 중일지 몰라.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지도. 그래. 가끔 이런 류의 꿈을 꾸곤 했으니까. 과거의 기억처럼 생생하지만, 겪어본 적 없는 광경이 나열되는 꿈. 잠에서 깨면 그 기억은 금세 사라져 버리곤 했지. 한동안 생생한 감각만 손 끝에 물집처럼 남곤 해. 목성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어.
‘-‘ 옅은 전자파 소리가 들려. 반쯤 숨 멎은 장작 소리 같기도 했지. 장작이 타는 소리? 목성은 그런 것을 들어본 적 없어. 하지만 그 소리라는 걸 알아. 들이마신 공기는 입천장이 시릴 정도로 차가워. 어디선가 밀려오는 온기가 느껴져. 보이진 않지만, 원형의 온기는 태양처럼 목성을 데우는 중이야. 암흑. 갑갑하지 않아. 오히려 이곳은 한없이 펼쳐진 것 같았지. 지금 밟고 선 지면이 없었다면, 우주에 내던져진 느낌이었을 거야. 목성은 빛의 틈으로 걸어갔어. 보이지 않는 벽에 이마를 대고 빛에 눈을 대었어.
틈 너머 공간이 보여!
건너편 공간은 여섯 면 모두 거울로 이루어진 어두운 밀실이야. 그리고 벽에 붙어 틈 사이를 훔쳐보는 누군가의 옆모습이 보여. 밀실 모서리마다 새는 은은한 조명에 드러난 얼굴. 틀림없는 자신이야! 거울 벽은 끝없이 그 모습을 복제해 사방으로 늘어뜨렸어. 무한한 방에는 무한한 그가 두리번거리는 중이야. 목성이 뒷걸음질 치자 시야는 다시 한줄기 선으로 좁혀졌어. 고개를 돌렸어. 90도 즈음을 시선을 틀었을 때. 쾅-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백색 밀실이 보였어! 놀라 고개를 주춤거렸을 때. 체감으로 느끼는 90도와 89도의 경계. 그 세밀한 시선에는 흑백의 점으로 이루어진 시끄러운 공간이 생겨나!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았지. 이곳은 전파가 잡히지 않은 오래된 텔레비전의 화면과 같았어. 목성은 더욱 마음이 갑갑해졌지. 그 오래된 텔레비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렇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다시 시선을 틀자, 고요한 백색 밀실이 보여. 귓속에는 웅-웅 거리는 방금 전의 여운만 맴돌고 있지. 밀실 안 자신의 책상에 누군가 앉아있어.
목성 자신이야!
다만 머리카락이 회색이야. 조금 더 늙은 자신이랄까. 그는 밀실 구석에 설치된 거대한 수조를 바라보고 있어. 수조 안에는 백색 유기물이 가득 담겼지. 목성이 이따금씩 꽃을 복제할 때 쓰던 것 말이야. 회발의 남자는 깍지 낀 채 팔꿈치를 테이블에 털썩 얹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어. “품명 목성. 복제 시작.”
백색 밀실이 대답했어. “인간은 복제할 수 없습니다.”그 남자는 턱을 괸 채 눈을 치켜떴어. “내가 사람을 복제하려는 이유는 영생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야. 단지 그를 되돌리고 싶을 뿐이야.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지.”
백색밀실은 고민하듯 타일 모서리마다 새는 격자 빛을 한동안 깜빡였어. 그리고 대답했지. “인간은 복제할 수 없습니다.”
남자는 고개 들어 벽을 바라보았어. “사회와 얘기하고 싶네.” “사회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백색밀실의 대답에 그는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뉘었어. 그리고 잠시 밀실 내부를 돌아보았어.
그러다 목성과 눈이 마주쳤지.
같은 얼굴을 가졌지만 회발의 남자는 자신 같지 않았어. 날 선 눈초리. 굳게 내려앉은 입가. 목성의 등허리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서늘한 공포가 들어찼어. 어두운 밤 거울을 마주보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렸어. 예의 천둥소리가 울려! 목성은 반사적으로 다시 백색밀실을 향해 고개를 고정했지. 남자는 고개 숙여 땅바닥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지.
“내가 그를 복제하려 한다면 어떤 형벌을 받게 되는가?”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날 죽일 것이라는 말인가?”
“아니오. 사회는 인간을 죽이지 않습니다. 대신 젊음을 중단합니다.”
“내가 복제를 포기한다고 해도, 지금 시도하려 했다는 것으로도 죄를 물을 것인가?”
“아니오. 사회는 인간을 이해합니다. 범죄를 실행하려는 찰나의 순간에 죄를 부여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 죄를 물을 것인가?”
“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복제를 명령하는 순간에 죄를 묻습니다.”
남자는 팔걸이를 잡고 일어섰어. 밀실 모퉁이를 돌며 생각에 잠겼지. 회색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어.
“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말이군. 그런 일을 없을 거야. 그가 그립긴 하지만, 나는 이미 한번 그를 버렸으니까.”
그는 정면의 출구를 통해 나갔어. 그러자 밀실의 모든 조명이 꺼졌지. 이젠 어딜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