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당신의 장미가 아니랍니다.
“장미?” 그녀가 멈춰 섰어. 팔짱을 끼고 한 손을 턱에 갖다 대었지. 한참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가 두 손바닥으로 천천히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어. “장미. 장-미. 마음엔 들지 않지만, 그것 말고는 내게 어울리는 것이 없네요. 지금 나는 하나의 장미와 다름없으니까요.”
목성은 몸을 돌려 도로를 향해 걸어가며 혼잣말을 내뱉었지. “정말 무슨 말이야 저게.”
잠시 후 장미가 쫓아오며 말했어. “당신은 상처가 낫질 않네요! 혹시 여전히 아픈가요?”
“네. 여전히 아프고, 더 아파질 것 같네요. 병원은 내가 가야 하는데 말이죠. 왜 이렇게 쉽게 사람을 때려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한동안 둘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 빛의 도로에 발이 닿았을 때 그녀가 말을 꺼냈어.
“당신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는 돌아보지 않았어. 대신 멈춰 선 채 시계 이곳저곳을 눌러보며 볼멘 목소리로 대답했어. “목성”
장미 역시 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지. “당신은 초췌하고 가녀리면서 이름은 참 거대하네요.” 목성은 흘깃 그녀를 쳐다보았어. 장미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어. 다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 목성은 기분이 상했어. 이내 고개를 돌리고 기억을 더듬어 자동차 보관소를 향해 걸어갔지.
“목성. 목성이라. 별이면서, 신의 이름이네요. 날씨를 지배하는 신들의 왕이죠. 그런데 당신은 신보다는 왕자에 가깝네요. 아주 어려 보여요. 어린 왕자가 생각나네요. 어린 왕자와 장미. 일부러 장미란 이름을 지은 것인가요. 지나치네요. 전 당신의 장미가 아니랍니다. 왕자님.”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장미가 마음에 안 들면 직접 이름을 지어요.” 목성은 볼이 붉어졌어. 등을 돌리고 앞장섰지. “큭- 어린 왕자님!” 그녀는 어느새 목성의 옆까지 다가왔지. 그리고 큭큭 거리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어. 목성은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지.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어. 다만 그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뻤어. 목성이 보기에는 말이야.
목성과 장미는 자동차 보관소에 닿았어.
빛의 차로를 사이에 둔 두 개의 거대한 건물은 꼭대기가 보이지 않아. 구름 위로 선 거인의 다리 같았지. 장미는 벽을 매만졌어. “벽에서 바람이 새어 나와요.”목성은 입술을 들썩이며 말했지. “이런 거 처음 봐요?” “네.” “어떻게 살아왔길래 모를 수가 있죠? 저 차로도 처음 봤죠? 혹시 어려서부터 감금당하거나, 산속에 버려진 것인가요? 용케도 사회에게 들키지 않았네요.”“음. 납치를 당한 건 아니에요.” “그럼요?”
장미는 휘둥그런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목성을 외면하고 벽 가까이 입술을 대고 말했어.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목성은 그녀에게 걸어가며 말했어.“당신 몰골을 봐요. 안 물어보게 생겼어요? 그리고 말은 당신이
더 많이 했어요. 됐고, 할아버지는 어떻게 알아요?”
장미는 다가오는 목성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어냈어. 붉게 칠한 매니큐어가 반짝였지. “더 맞을래요?” 목성은 백색 셔츠를 넘어오는 그녀의 차가운 손길에 주춤했어. 동시에 자존심이 상해버렸지. 하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어. 그냥 이대로 장미를 두고 도망칠까. 아니야 금방 등덜미를 잡힐 거 같아. 그는 건물 안 세워진 차들을 둘러보았어. “어떤 거 타고 싶어요?” “아무거나.” 그녀는 차들 사이를 또각또각 걸어 다녔어.
“이곳에 차를 그냥 두어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 모양이네요.” 장미의 질문에 목성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말했지.
“이곳엔 보이지 않는 유령이 있거든요. 그렇게 차를 아무렇게 만져대다가는 유령이 혼을 낼 거예요.” 그녀는 살짝 손을 뗐어. 그리고 말했지. “유령은 내게 어떤 짓도 할 수 없어요. 나는 강한 정신을 가졌거든요.”
“네 그러시겠죠. 저 빨간색 차 탈래요?”장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짓으로 흘깃 쳐다보았어. “아니요. 붉은 건 질려요.” “어울려서 물어본 건데.” “당신은 날 몰라요.” 목성은 그녀 말을 무시하고 다른 차를 가리켰어. “그럼 저기 회색 차는?” “싫어요.” “그럼 뭘 타고 싶은데요?”“당신이 골라주세요.”
“골랐잖아요! 그리고 내가 고르는 것마다 당신이 싫다고 하잖아요. 지금 새벽이에요. 무척 피곤하다고요. 게다가 내 얼굴에 상처 안 보이나요. 아파요! 진통제가 필요하다고요! 하, 그럼 저 검은 차는요?”
장미는 팔짱을 낀 채 고개 젖힌 눈빛으로 목성에게 대답했어. “검은색도 지겨워요. 제가 입은 검은 코트, 붉은 잠옷 안 보여요?” “보이는데, 휴… 그럼 저 노란 차 타요.” “싫어요.”
장미의 대답에 목성은 그대로 실내 구석에 놓인 철제 의자로 걸어가 앉고는 볼맨 소리로 말했어. “당신이 골라요. 고르기 전까지는 움직일 생각 없어요.” 장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었지. 침묵이 이어진 후 그녀가 말했어. “저기 있는 검은 차를 타요.” 목성은 화가 솟구쳤어. “검은색 싫다면서요! 지겹다며.” “저 차는 낯이 익어요.”
장미는 구석의 낡은 차를 가리켰어. 자동운전 기능이 없는 차였지.
“저건 차로를 다닐 수 없는 차예요. 게다가 직접 몰아야 해요. 나는 운전 못해요. 계약을 하지 않았거든요.” “나는 몰 수 있어요.” 그녀는 또 한 번 두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어. 그녀는 그런 자세를 취할 때마다 유독 눈을 길게 감았다 떴지. 목성은 시선을 피했어. 팔짱을 낀 채 물었지. “차를 몰 수 있다고요? 방금 숲에서 나온 당신이?” “몰아 본 기억이 있거든요.”
“거짓말인 거 알아요. 당신. 태어나서 지금까지 숲을 나온 적 없잖아요.”
“네. 없어요. 하지만 저 차를 몰아본 기억은 있어요.”
장미는 또렷한 눈망울로 그를 쳐다보고 있어. 여전히 그녀 자신을 껴안은 채. 그는 따질 것이 많았어. 하지만 모든 물음은 그녀 특유의 눈빛에 묻혀 사라져 버릴 것 같았지. 목성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 “저기 차 옆에 세워진 패널에 손바닥을 대요.”
그녀는 알겠다는 듯 또각- 힐 소리를 내며 걸어갔어. 그리고 하얀 손바닥을 대었지. 그녀 머리맡까지 솟은 기다란 패널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그녀 얼굴을 훑고 지나갔어. 곧 화면에 그녀 사진이 떴어. 멀찌감치 패널을 보던 그는 별안간 의자를 내동댕이치고 뛰어갔어! 패널을 두 손으로 잡고 뚫어져라 쳐다봤지. 미지(米地) 1982년 생. 영구 면허 소지.
“1982년 생?” 목성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외쳤어. “거의 백 살이잖아 당신!” “저는 미지가 아니에요.” “방금 인식했잖아요. 당신이라고!” “난 미지이면서도 미지가 아니에요.”